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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유현경 <호우시절>
기간| 2020.05.07 - 2020.06.05
시간| 10:00 - 19:00
장소| 갤러리나우/서울
주소| 서울 강남구 신사동 630-25
휴관| 일요일, 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25-293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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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현재 독일에서 작업하고 있는 유현경의 <호우시절>展이 갤러리나우에서 열린다.
    유현경은 모델이나 대상을 보고 그들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모델이나 대상의 특정상황, 대상이나 모델에게서 느껴지는 그것 즉 감정적 느낌, 대기감, 대상의 아우라, 관계성 등을 통해 이입되는 에너지를 자신의 목소리로 변환해서 캔버스에 그려나가는 작가이다. 
    그 동안 추상표현 인물화를 주로 그려온 유현경이 이번에는 금각사를 그린 그림이 3점을 포함하여 새로운 풍경들과 인물 신작들을 보여준다. 그녀의 그림은 대상을 보고 있으되 보이지 않는 느낌과 기운, 자신의 심리상황 등 비가시적인 영역을 가시화하는 작업인데 그녀의 최근작에서는 새로운 심리적 변화가 감지된다.
    “어둠은 점점 엷어지고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라 실재임을 그림이 방증할 것이다. 사람의 어두운 얼굴만 보이고 풍광의 쓸쓸한 모습만 보였는데 언젠간 어둠이 더 이상 나의 관심 요소가 아니어서 그 어둠을 볼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작가노트발췌) 이번 전시에서 발표하는 작품<금각사>가 바로 그것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유현경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로 징그러울 정도의 노골적인 문장 구사,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수단으로 내용을 감당한 지점에서의 작가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고한다. ”뜨거움은 전달 하되 냉정하고 차가운 방식으로의 은유. 이 지점이 작가가 유지해야 할 온도라고 생각하고 <금각사>를 마음에 담아두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소설로 드러내는 마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답고 담백한 건축에 대한 찬사를 표현하고 있는데, 금각사의 극한의 화려한 금장과 담백하고 절제된 건축적 표현양식과 만나는 것처럼 소설의 온도와 유현경의 감성과 직관이 만나는 지점에서 드러난 작업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의 작업들과는 달리 어둠에서 벗어나 밝음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그 밝고 좋은 기운이 전달되는 작업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이번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기분이 좋다. 이는 작년까지 설악에서 작업하며 자연과 가까이 지냈고, 작업공간이 바뀜으로 그동안의 과거를 좀더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풀어냈던 것으로 보인다. 
    
    “인물을 보는 태도에서는 제 편에서 보던 방식에서 상대의 편에서 보는 방식으로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제가 보고자 하는 일부의 모습으로의 인물을 그렸다면 지금은 과거보다 상대의 모양을 듣고 보는 방식으로 그리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전의 작업에서 자신의 느낌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기억하고 싶은 과거, 대상과의 호상간의 관계성에 더 주목한 작품들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어두웠던 과거에서 벗어나서 밝고 경쾌하게 바뀐 그의 새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자리이다.
    
    작가노트
    
    누군가를 오래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어떤 과거를 보냈고 현재 그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는 것이 즐거운 경우에 한할 것이다. 그것은 가장 좋은 텍스트이지만 아쉽게도 상대의 과거를 곁에 두고 향유하기에 개인들은 너무도 분주하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사람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무척 즐거운 삶이기에 노년은 깊고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노년이 불안한 인물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느린 걸음이 느린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안고 갈 역사가 많기를. 그 느림이 초조하지 않기를 바래 본다. 
    누가 나에게 어떤 사랑을 했는지 물었다. 나는 그 사랑 때문에 아버지를 극복했다고 답했다. 그 사람은 깔깔깔 웃으며 나는 사랑을 알지 못하며 내가 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은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했고 아직 아버지의 품에서 살고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어떤 말을 해도 무섭지 않았고 어떤 말을 해도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를 극복해야만 사랑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억하는 오래전부터 힘든 날은 여지없이 아버지의 꿈을 꾸었다. 그를 만나면서 그 꿈의 빈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아버지에서 시작한 꿈은 꿈의 중간 즈음부터 그의 얼굴로 바뀌었다. 우리가 세상에 나와 처음 마주하는 가장 큰 사람. 우리 앞에 우뚝 서있는 존재. 그 절대자로서의 아버지의 자리에 그를 가져다 두고 그 무게를 부여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많이 좋아했지만 내가 부여한 자리가 너무 높아서 작은 실수와 잘못에도 크게 미워했다.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그를 만났다. 한참 뒤, 그에 대한 미움과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골몰하던 어느 날, 아버지를 잊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내가 어둠에서 나오길 권고했을 때와 어떤 류의 음산함을 경계했을 때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를 만나며 사랑 혹은 사랑이라는 명목의 섹스가 있었지만 그가 가고 난 밤들의 어둠과 음산함은 덮으려고 애를 써도 폐색하게 드러났다. 나의 어둠과 내 문제(때문이라고)라고 말했다.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멀리 도망치며 관계의 문제에서 가해자가 되었다. 생존을 위해 갔지만 그곳에서 가해에 대한 죄책감으로 또 다른 지옥을 맛보았다. 도망친 곳에서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절대자의 위치를 그에게 부여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 기다릴 것 같았지만 돌아왔을 땐 떠나고 없었다. 비극이었다. 그 뒤, 외관상 요란하고 물리적인 비극에 부셔졌을 때 아프지 않았다. 비극을 몰랐다면 충격에 다쳤을 것이다. 움직여 지는 대로 가능한 선에서 어그적 어그적 일을 하고 있었다. 나를 여러 번 다치게 했으나 여러 번 구했고 여러 번 아프게 했지만 여러 번 치유했다. 삶의 큰 부분을 위로 받았다. 
    거절인 줄 알면서도 도망치는 그를 쫓으며 나의 모양이 망가지는 모멸감을 느꼈지만 그 모멸감이 클수록 아이를 버리고 도망친 가해의 죄책감은 풀리고 있었다. 모멸감은 털어내니 시간과 함께 털어졌다. 오래 남아있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어서 그 모멸감으로 바꾸기 위한 (이) 영악한 연극을 다급히 마치고 당분간 어떤 관계도 책임지지 않을 사회로 건너와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 기본적인 의사 표시 외에 미묘함을 만들 수 없는 불충분한 영어 구사를 가지고 이방인으로 간주되는 지금. 마침 통행이 금지되어 아무도 없는 도시의 문화 유산을 걸으며 봄의 공기와 낮이 밤으로 바뀌는 저녁의 불빛과 집에 가는 길의 맑은 바람을 느끼며 행복하다. 이방인으로 작업실과 집 사이를 오가다가 작업실과 집이 속한 사회내에서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에 실망하게 되면 또 잘 모르는 사회로 이동할 것이다. 
    그가 떠난 후 한동안 비어 있던 아버지의 자리에 아버지로 등극한 나는 이제 남성 어른과 어른 여자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그들의 반대와 비판에도 크게 아랑곳하지 않으며 책임져야할 것들을 보호한다. 아이가 세계에 대해 갖는 겁과 경계로부터 벗어나 두려움 없이 지내기로 한다. 나의 삶은 아버지를 잊기 전과 아버지를 잊은 후로 나뉘게 되었다. 아이에게 사랑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랑을 경험해서 이 큰 세계에서 자유 의지를 가진 독립체로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감당하며 돛대를 잡고 항해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선체의 앞에서 키를 잡고 운행하려면 너가 선택할 수 없이 부여된 것들로부터의 무게를 버리고 그 어떤 부채와 빚도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사랑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랑이라는 환상을 궁금해하고 동경하며 그것이 많은 것을 위로해 줄 것만 같은 기대로 괜한 거리를 서성이는 외로운 일들은 없을 것 같다. 대신, 일을 마치고 따듯한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 천천히 요리한 저녁을 먹고 불을 끄고 잠이 든다. 사용하지 않는 곳들은 불을 껐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나와보면 또 불이 켜져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불을 켜고 잔다. 가장 무서운 것은 어둠이다.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노력했지만 턱없이 부족했을 수는 있을 것이다. 어둠은 점점 엷어지고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라 실재임을 그림이 방증할 것이다. 사람의 어두운 얼굴만 보이고 풍광의 쓸쓸한 모습만 보였는데 언젠간 어둠이 더 이상 나의 관심 요소가 아니어서 그 어둠을 볼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마치 처럼. 이제서야 맑은 것에 집착했던 그의 어둠을 본다.
    그림은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혹은 어떻게 이해하고 싶은지에 대한 마음을 반영하는 시각적 결과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글을 썼다. 과거가 극복되고 잊히지 않는 한 같은 과거를 계속 다르게 반복하고 번복한다. 나는 다르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매번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게. 나는 매번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매번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게.			
    ※ 아트맵에 등록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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