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노정연은 그동안 영국에서 오랜 기간 유학생, 도시의 노동자로 지내오면서 도시에서 받은 인상과 반복적으로 보이는 풍경을 드로잉으로 표현하였다. 

이전의 작업이 언젠가 떠날 것을 염두해 두면서 빠른 필치로 작게 그리는 것에 집중한 그림이었다면, <무리, 무리들>에서는 한국에서의 정착을 예고하듯 벽을 에워싸는 긴 캔버스에 가득 메운 식물의 군집을 흑백으로 표현한 작업이 중심을 이룬다. 

태어난 곳, 고향, 유학하는 도시 등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이 작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물리적인 요소였다면, 외국에서 한국으로 오면서 작가가 경험한 격리 생활을 기반으로 제작한 <무리, 무리들>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나와 우리를 형성하는 집단(Cluster)의 모습과 유기적인 식물 생태계는 분리와 격리가 일상인 지금의 삶에 대해 질문하는 주요한 작업의 요체이다. 다양한 속도감과 압도하는 규모로 보이는 식물의 군집은 단순한 생태계의 모습을 넘어 세대와 계층을 끊임없이 나누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면서 잠시나마 슬기롭고 즐거운 집단 생활을 꿈꾸게 한다.

[출처] 무리, 무리들|작성자 space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