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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박윤지 <PAST PRESENT>
기간| 2020.09.03 - 2020.09.26
시간| 화요일~토요일-10:00~18:00 수요일-10:00~21:00
장소| OCI 미술관/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
휴관| 일, 월,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34-044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박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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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시간의 표면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리라는, 변함없이 존재하리라는 확신의 대상이다. 항상 존재하는 시간은 모두에게 주어지지만 모두에게 동일한 분량으로 주어지지는 않는다. 보편적이되 개인적인 시간은 다만 계속된다. 그렇다면 개개의 삶이란 결국 삶 가운데 계속되는, 보편적이면서 개인적인 시간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문제일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을 삶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대하며 살고 있는가.
 
누구에게나 항상 있어 온 것들은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사유의 대상으로 직면 되기 쉽지 않다. 주로 영상을 통해 움직이는 이미지를 다루는 미술가 박윤지는 시간을 맞은편에 두고 바라보기로 하고, 특정한 매개를 통해 바라본다. 계속. 그러다 매개를 통해 시간의 이미지를 연출해 보기도 한다. 여전히 맞은편에서. 시간을 대상으로 삼아 맞은편에 두고 바라보겠다는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시각 예술가다운 선택으로 보이고, 나아가 ‘본다’라는 행위를 다시 돌아보게끔 한다. “‘본다’라는 행위가 눈이라는 시각적 인지 감각기관의 기능뿐만 아니라 개인 주체의 의지를 나타낸다는 가능성[…]”(박윤지, 「작가 노트」 중). 작가는 시간을 마주 바라보기로 자신의 의지를 정하고, 시간을 직면하면서, 시간을 겹치고, 시간을 분리하고, 시간을 만들어나간다.
 
첫 번째 개인전 《white nights》(2018)에서, 박윤지는 낮과 밤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던 곳에 머물며 촬영한 영상들을 전시했다. 변화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불특정한 시간이 불특정한 공간과 교차하는 순간들을 지켜보고 기록한 영상들은 그 결과물이 초현실적으로 완성되어 시공간의 공백처럼, 구멍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후 작가는 시간을 마주하는 자신의 태도를 더욱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이듬해 열린 박윤지의 두 번째 개인전 《tomorrow》(2019)는 이번에 열리는 세 번째 개인전 《past present》(2020)과 연장선상에 있다. 전시의 제목들이 밝히듯 세 가지 시간이 펼쳐지는데, 그 중심에는 현재가 있다. 현재에서 발견해 낼 수 있는 미래, 현재에서 발견해 낼 수 있는 과거, 두 가지 연작이 각 전시를 통해 펼쳐진다.
 
이미 열린 《tomorrow》에서는 유동적인 물과 빛으로 미래의 이미지를 포착했다. 색온도로 인해 변화하는 조명의 다채로운 색이 담긴 화면 자체가 거대한 조명으로 인식되는 영상 〈breath〉는 매끄러워 보이는 곡선의 표면에 물줄기가 흐르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물이 흐르는 가운데 둥근 표면이 반사되어 생긴, 미지의 곳으로 보이기도 하는 어떤 지점이 또 다른 빛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보는 이의 시각을 새롭게 환기하겠다는 듯 눈부시게 번쩍이는 화면으로 시작되는 〈the bone〉의 경우 조명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촬영한 것임이 점차 드러나는데, 그러다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면서 조명이 자신의 골격 일부를 푸르게 드러내고, 이 푸른빛에도 물이 흐르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to the figure of life〉는 물의 표면이 얼음 조각으로 부스러져 떠다니는 모습의 연속이다. 물이 일렁이는 대로 흐트러진 채 움직이는 조각들은 원래의 자리를 의외로 쉽게 떠나지 않는데, 화면이 전환되고 나면, 처음보다 더 흔들리는 물 위로 어느새 자잘해지고 희박해진 모습이 밝게 드러난다. 〈belonging〉의 물은 남아 있는 즉 아직 사라지지 않은 얼음으로 밀려드는데, 초반에는 경계를 쉽게 침범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다 조금씩 경계를 적셔 가면서, 점차 밝아지는 빛과 함께, 뚜렷한 방향을 가지고 나아간다. 〈timeless〉는 풀숲에서 발견한 반짝임을 담고 있다. 카메라는 거미줄을 꾸밈없이 클로즈업하면서 그물이 빛의 조각으로 존재하는 순간에 집중한다. 원하는 빛을 포착한 시선은 흔들림이나 매끄럽지 않은 듯한 연결을 개의치 않는다. 이어 카메라는 다시 물러나 자신이 찾아낸 반짝임이 사라지기 전에 멈춘다. 작가는 이렇게 움직이는 속성을 지닌 물과 빛을 다각도로 바라보면서 고정된 현재에서 발견한 변화하는 모습을, 그러한 불분명한 움직임을 좇는 개인의 시선을 자신이 바라보는 미래로서 제시했다.
 
이제 열릴 《past present》는 미래에 대한 전시에 뒤이어 열린다는 점에서 이미 시간의 방향을 거꾸로 만들고 있다. 이는 작가가 미래보다 과거가 보다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이라고 판단한 결과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이미 온 시간은 이미 각자의 시간에 자리해 각기 왜곡되기 쉽기 때문일까. 출발 지점은 같다. 현재에서 미래의 이미지를 발생시켰듯이 현재에서 과거의 이미지를 발생시키기. 역시 움직이는 물과 빛을 통해,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이들의 방향성과 성질을 관찰하면서. 영상 〈recalling〉은 비 오는 날 주행 중인 차의 뒷좌석 창문으로 밖을 바라본 모습이다. 뒤를 바라보면서 뒤로부터 멀어지는 시선은 빗물로 인해 흐려져 있다. 바깥의 빛들만 어렴풋이 흔적으로 보이는 상황. 계속 물과 증기로 얼룩진 상태의 화면. 멀어지다 멈추고, 다시 멀어지고,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지는 과정을 카메라는 그대로 담는다. 와이퍼가 유리창을 닦기도 하지만 다시 빗물이 흐르고 습기가 차올라 뿌예지고, 그러다 화면이 끝난다. 회상은 이렇게 명확할 수 없는 모습으로 명확히 재현된다. 〈forgetting〉은 모든 것을 지워 버리려는 듯한 역동적인 물방울들의 솟구침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하는 물방울들은 그러면서 배경과 자신의 경계를 지워나간다. 물의 움직임은 화면에 회색 얼룩으로 번지면서 무수한 반짝임으로 화한다. 결과적으로 끝없는 반짝임만을 담게 되는 화면. 〈being〉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수풀에 방사되는 물줄기를 보여 주는데, 그러면서 수풀 사이로 비춰 들어오는 빛이 클로즈업되고, 그 모습은 물이 빛으로 존재하는 순간으로 보이는 한편, 빛은 물의 존재를 그렇게 드러내 준다. 〈forever〉. 일렁임이 반복되는 물의 표면. 그러다 그 물이 존재하는 공간을 일부 보여 주기도 한다. 표면이 추상화되어 담겨 있지만 작가는 표면을 추상화하는 작업에 몰두하지는 않는다. 추상화되던 화면이 돌연 공간을 드러내는 장면이 그 증거가 된다. 이러한 현상이 있을 수 있는 이유를 보여 주는 듯한. 그러면서 다시 표면. 무수히 반짝이는, 포착된 과거의 영원. 역시 〈in silence〉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시선의 움직임을 따라, 무수히 작은 빛들의 무수한 움직임으로 발견되는.
 
과거, 현재, 미래. 그중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지나가는 현재다. 지금 나의 눈으로 보고 있는 현재만이 내게 명확하며, 이는 순간으로 지나간다. 그리하여 박윤지는 추측이나 짐작 등에 기대어 과거의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거나 미래의 시선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대신, 현재에서 과거를, 현재에서 미래를 바라보기로 택한다. 보다 명확한 시선을 획득하기 위한 이 선택은 자연스럽다. 현재에 있는 우리는 현재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나 과거는 현재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에게는 현재만 다가오고, 현재만 지나간다. 모든 것은 현재로 귀결된다. 우리가 지금 현재에 있기에, 지금 현재에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를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이미지를 발생시키는 과정 안에서 시간의 상대적 방향성을 발견하는 행위를 통해 개인의 의식의 흐름과 시간의 관계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모색한다.”고 밝힌다. 여러 상황 속에서 물과 빛의 속성과 움직임을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시간은 과거로서, 작가가 의도한 바에 따르면 개인이 의식하는 과거의 심상으로서 시각화된다. 그런데 현재 그리고 현재에서 발견된 과거와 함께 영상 속의 그리고 영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움직인다. 자연히 던져지는 질문. “무엇이 현재를 지속하게 하는가.”(박윤지)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본 《past present》의 이 질문은 현재에서 미래를 바라본 《tomorrow》에서도 유효하다. 박윤지의 작품 속에서 과거나 미래는 현재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현재가 된 과거, 현재가 된 미래가 현재를 지속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의식하게 되기까지, 우리는 영상을 바라보며 지금을 잠시 잊고, 과거의 현재와 미래의 현재를 만난다.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고서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 보내게 되는 시간. 작가는 이러한 초월의 시간을 삶에서 개인을 분리할 수 있는 증거로 보고, 이러한 시간들을, 자신의 시선과 우리의 시선이 움직여 공존하며 만드는 어떤 가능성의 순간들을 발생시키려 한다.
 
그러므로 박윤지의 작업은 시간을 바라보면서 시간에 저항한다. 작가는 시간의 주요 매개로 택한 물과 빛을 바라보고, 지켜보고, 서로에 대한 반응을 기록한다. 그러면서 가능성의 대상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드러내려 한다. 영상 중 장면이 급박하게 전환되거나 갑자기 끝나는 것은 분명하게 목격하기 어려운 시간의 일정 부분을 잘라 내 분명하게 보여 주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무한히 거대해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대상인 시간을 볼 수 있는 만큼 보고, 보여 줄 수 있는 만큼 보여 주기.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쳐진 시간은 작가의 집중된 시선 아래 결과적으로 추상적으로 처리된다. 이제 거대함은 평면화되고, 표면화되고,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된다. 시간성을 담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구체적인 시공간을 지운 추상회화적 순간이 되고, 우리는 이 순간의 표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바라봄으로써 받아들인다. 이 표면은 움직이고, 움직이는 표면을 따라 움직이는 시간은 지금의 시간을 잊게 만든다. 시간을 기록하면서 또 다른 시간을 불러오기 위해 시작된 박윤지의 작업은 이렇게 우리의 시간을 지우는 결과로 향한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자리 잡게 하면서, 현재라는 원점의 자리로 돌아가게 한다.
 
원점에서 바라보고 있게 되는 영상들은 바라보는 이에게 질문으로 남는다.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바라본 시간을 어떻게 담아낼까. 그리고 다시, 담아낸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까. 시간을 하나의 존재로서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나의 시선으로 존재하는 시간이 너의 시선으로 존재하는 시간과 교차되고 연결되며 초월 되는 시간은 작가가 추구하는 ‘심상적 접촉’이 일어나는 시간의 표면의 이면. 미래와 과거 그리고 현재가 보여진 지금, 다음 시선이 궁금해진다.
 
김뉘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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