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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이피x유재윤 <나보다 먼저 죽는 몸에게.>
기간| 2020.10.06 - 2020.10.30
시간| 12:00 ~ 19:00
장소| SPACE55(스페이스오오)/서울
주소| 서울 은평구 신사동 36-30
휴관| 월요일
관람료| 무료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이피
유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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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나와 당신을 추모하며>, 김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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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후 11시까지 아무도 저를 부르지 말아 주세요”

내가 글을 쓸 때면 방문 앞에 적어 놓는 안내문 내지 경고문이다. 추석 연휴에도 예외는 없다. 생업을 위해 소음을 죽인다. 7명이 살고 있는 집에서 이러한 일시적인 단절은 효율적인 생존전략이다. ‘좋은 글’을 쓰고 마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도 단절해야 한다. 창의적인 작가들과 흥미로운 작품들 앞에서 무수히 떠오르는 감상과 아이디어, 논조들이 있지만, 효율적으로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이들 중 대부분을 죽여야 한다. 생존을 위함이다. 발표한 글은 몇 편 안 되는 데 책장 한 칸이 아이디어와 기획안 노트로 가득한 것을 보면 이 생(生)을 위해 사(死)로 생략된 것이 분명 더 많다.




처음 예술을 공부하며 바랐던 바와 다르게 일상 중에 마주하는 영감과 감각 모두 많은 부분을 건너 뛰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작가들의 예술관과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가끔은 어떤 작품 앞에서 넋을 놓는 것을 보면 내가 가진 예술에 대한 기대와 예술이 내 세계에 작동하는 범위는 단절로 점철된 현실 너머를 향한다. 전시 <나보다 먼저 죽는 몸에게>는 생을 근거로 희생된 것들에 향한 갈증과 시선을 재료로 그 얼개가 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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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죽는 몸에게>는 이피, 유재윤 작가의 2인전이다. 두 작가는 전지구적 전염병으로 인해 기존의 구조가 해체되고 물리적 단절이 분명해지기 오래전부터 자신의 감각과 상상만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계관과 현실과 가상 경계의 인물, 상황들을 구축해왔다. 이들은 일상적인 경험과 감상을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보고 접했지만 대부분 사람의 현실에서 잊히거나 비주류 기법, 소재로 배제되어 낯선 고려불화 기법, 펠트 수선을 통해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종교적 제단화와 귀여운 인형, 두 작가의 방법론과 작품들의 이미지 양상은 다소 거리가 있지만, 예술을 현상과 현실 경험의 연결선, 확장선 상에 위치 시켜 개인의 사유와 창작의 존재론적 가치, 예술과 현실의 관계성, 확장가능성을 고집스럽게 탐구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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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피의 작업 대부분은 매일 그리는 드로잉에서 시작한다. 사회와 일상에 만연한 여성들을 향한 폭력과 억압, 뉴스로 접한 팔레스타인 지방의 종교 분쟁과 무차별적 학살로 인한 아이들의 피해, 해외여행 중 인식 차이로 인해 겪은 괴리감, 전시를 앞두고 스트레스에 짓눌린 작가 본인의 상황, 사회적 사건의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시위 현장 등, 일상에서 접하고 공감하는 사건과 감정들이 그 소재가 된다. 이피의 작업은 현상과 상상의 병치, 배합을 통한 현실 풍자적 성질을 갖고 있지만, 작품마다  등장하는 천사와 같은 초월적 존재와 무수히 많은 종교-신화적 모티브는 고려불화 중 수호적 기능에 초점을 둔 신중탱화 혹은 희망적인 구원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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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그 배경과 세부는 세월호에서 희생된 소녀, 이를 기리는 시위대와 기득권, 언론 등이 보이는 상반된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기억, 지역의 전통과 역사성에 대해 더는 고민하지 않는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풍경, 폭력이 만연함에도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의 풍경 등 지극히 현실적인 요소들로 완성된다. 보는 이의 사회-정치적 관여도, 종교적 신념, 도상이나 기호에 대한 선호에 따라 작품들 간의 가치는 다르게 판단될 수 있지만, 모든 작품은 이피 자신의 신체적 감각, 경험, 실천을 통해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잉태’한 아이들로 또 다른 신체, 정신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처럼 모든 작품, 즉 매일의 감각과 사유, 실천은 이피에게 동일한 중요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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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대다수가 자의 반 타의 반의 초연함이나 비관, 냉소로 외면하는 매일의 불쾌한 편린을 수개월의 실천을 통해 기리고, 정중한 의식에 걸맞은 제단화 형식으로 구현하여 예술로 승화시킨다. 이피는 분명 실재하지만, 현실 속 효율성의 논리로 세탁되거나 심지어 정당화되는 배제와 폭력의 단상을 놓치지 않고, 여성 혹은 이방인 등으로서 피부로 직접 경험하고 그로 인한 감정이나 고통을 몸에 품으며 오랜 신체적 수행을 통해 예술작품을 낳는다. 매일의 자신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조금 더 나은 이상과 기대를 담아 내일을 위한 유산으로 남기는 수행, 이러한 전승의 반복은 거듭하며 (남근중심적인 정신분석학의 표현을 빌리면)'거세된' 현실의 허술한 구멍을 메꾸고, 온전함에 한 발 더 가까운 세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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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윤은 일상 속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적인 이야기와 존재들을 인형으로 구현한다. 함께 취업을 준비하는 쌍둥이부터 비키니를 입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두 친구, 여러 개의 담배에 동시에 불을 붙이려는 남성, 지구에 나타난 외계인, 젖이 여섯 개인 ‘육젖이’까지, 그 위치를 규정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해볼 법한 상상’과 작가 특유의 기발하고 독특한 취향, 공상 사이 어딘가에 있는 상황과 캐릭터들은 부드럽고 알록달록한 펠트와 작가의 바느질을 통해 인형으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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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봤을 법한 펠트 인형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보편적인 공산품 인형과 비교했을 때, 표면은 불규칙하고 마감은 투박하다. 기계적 완성도를 근거로 현실 속 자리를 뺏긴 이들은 이제 낯설다. 우리는 ‘쓸데 없는 짓 하지 마’라는 핀잔과 함께 비슷한 낙서 가득한 공책을 덮었고, 낙서들은 쓸 데가 없어 언제 버린 지도 기억나지 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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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과되지 않은 채, 죽지 않고 살아난 작가의 상상과 인형들은 그저 유별나거나 역설적으로 ‘힙’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유재윤의 작업이 가진 의미는 단지 동심이나 순수한 감각, 현실을 반영하는 오색찬란한 상상력에 국한되거나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존재의 근거나 양식은 지극히 현실적인 조건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부모님의 병상을 지키면서 펠트 인형 작업을 시작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반복되는 매일은 ‘피치 못하게 이어가는 일상’이었고, 상상과 작업은 현실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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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은 작가가 자란 인천의 어느 골목이나 주변인, 병실 창밖에서 본 사람들의 이야기나 외양을 토대로 한다. 병실은 안전에 유의해야 하기에 독성이 적고 쉽게 재단하여 조형할 수 있는 펠트를 재료로 한다. 제한된 사람들만이 오가는 적막한 병실에서 대면할 수 있는 존재 형식을 갖춘 인형을 만든다. 다채로운 색과 부드러운 질감의 인형들은 역설적으로 그 이면, 현실의 답답함과 속박을 지축으로 만들어지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위치하며 양단의 안정감과 유쾌함, 씁쓸함과 덧없음 사이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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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피와 유재윤, 이들의 동화 혹은 신화적인 양식의 작업은 물질적인 소재나 형식에 있어 새로운 현실의 가능성이나 유토피아적인 비전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지극히 현실을 경험하고 관찰하는 다큐멘터리적 시선을 근간으로 한다. 나에게 전시 <나보다 먼저 죽는 몸에게>의 의미는 그저 최소지출-최대이익, 효율성의 논리 속에서 일상의 다양한 감각과 상상에 죽음을 고한 본인의 대리만족 혹은 반성일 것이다. 그렇게 파악한 두 작가의 경험과 메시지 역시 상당 부분 생략됐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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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선천적 장애가 없는 남성으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았다. 누나가 둘 있지만 이들이 겪는 현실문제나 여성으로서 체감하는 폭력이나 억압은 평생 가늠 조차 할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오히려 소수를 향해 혐오를 가졌던 기억은 분명하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위선적으로나마 현실 문제를 마주하고 이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그리고 위선적으로 그저 묵도하고 외면하며 내 현실에서 죽음을 고한다. 그래서 나는 두 작가의 신체와 삶이 결부된 작업의 메시지를 온전히 해설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측하자면, 그 메시지의 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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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나와 당신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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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보다 먼저 죽는 몸에게|작성자 space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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