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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이정식 개인전 : 이정식
기간| 2020.10.13 - 2020.11.04
시간| 11:00~18:00
장소| d/p(Dslashp)/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8/417GH
휴관| 일, 월,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1599-1968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이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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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이정식’이라는 메아리


이정식은 세 번의 개인전을 거치며 HIV 감염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기반을 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정체성을 주제로 한 작업’이라는 표현은 그의 작업을 요약하는 가장 편한 방법이지만 HIV 감염인에 함께 딸려오는 사회적 편견 - 미디어가 왜곡한 파편적이거나 편파적인 오해가 만든 - 은 그의 작업을 이해할 때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작가는 사회적으로 고착된 편견을 해체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공통감이나 사회정치적 관점에서 제시하기보다 개인의 경험과 주관적 감각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를 통해 공동체의 주류와 타자의 관계를 나와 너의 관계로 치환함으로써 주류와 타자의 틈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첫 번째 개인전 《nothing》에서 작가는 HIV 치료제 스트리빌드 복용을 기억하기 위해 섭취 시간을 기록한 <nothing> 시리즈, HIV 치료제를 녹여 캔버스에 바른 <clean> 시리즈, 작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담은 종이 기록물을 파쇄하면서 낭독하는 영상 작품 <그 책>을 선보였다. 작가는 일상적 삶에 불현듯 개입하는 질병과 그에 대한 두려움을 시간기록의 공백으로부터 발견하는 한편, 알약이 녹아 없어지듯 질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녹아 없어지기를 희망하였다. 두 번째 개인전 《김무명》에서는 2013년 수동연세요양병원의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故김무명의 추모식에 방문하면서 영감을 얻은 동명의 작업을 선보였다. 이름을 밝힐 수 없어 장례식장에서도 ‘무명’으로 기록된 고인을 보고 작가는 낙인과 차별로 인해 자신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감염인의 사적 경험을 인터뷰하였다. 작가는 인터뷰를 글로 정제하고, 이들의 경험을 대표하는 사진 이미지를 글과 함께 배치하였다. 그리고 글은 다시 비감염인에 의해 필사된다. 공적인 장에서 사회적 차별과 배제에 대한 항의를 통해서만 가시화되었던 감염인의 경험은 필사라는 사적이고 느린 행위를 통해 전달되며 이를 통해 익명의 감염인과 비감염인 사이에 모종의 연대가 생성된다. 

이정식의 세 번째 개인전 《이정식》은 전시 제목으로 작가의 이름을 사용한다. 대개 작가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회고전 혹은 전시 제목이 없는 경우 대체 제목으로써 작가 이름을 제목에 사용한다. 이 전시는 2015년부터 작업을 시작한 작가의 때 이른 회고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땅한 제목을 찾지 못한 것도 아니다. 이 전시는 제목 그대로 ‘이정식’에 관한 전시이다. 삶에서 반복되는, 의미 없어(nothing) 보이는 일상적인 활동의 차원에서 질병 당사자의 주관적 경험을 담았던 첫 번째 개인전과 ‘무명’으로 살아가는 감염인의 경험을 공유하였던 두 번째 개인전을 거쳐 세 번째 개인전에서 작가는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다만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당사자의 시점에서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작품마다 자기 자신을 변주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이정식11>은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여러 라인 중 악세사리 라인 넘버가 11인 것에 착안하여 11개의 작가 두상을 제작한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실존적 삶을 미술로 재현하는 상황과 미술계에서 자신이 소비되는 방식을 고민한다. 정체성에 관한 작업은 그가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때로는 단편적인 이해에 그치기도 했다. <이정식11>은 표면적으로 소비되는 자신의 존재를 빈 기표로 내세운다. 전시 공간 어디에서든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전시의 마지막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며 전시에서 일구어낸 다양한 의미의 층위를 투영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오, 미키>는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 받은 차별과 배제의 경험과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경험을 교차시킨 짧은 소설을 바탕으로 한 2채널 영상 작품이다. 작품에서 소설은 불분명한 대상에게 말을 건네듯 내레이션으로 흐르며 검은 색 원피스를 입은 한 인물의 얼굴과 신체, 동작을 천천히 포착한다. 두 개의 모니터로 분열된 몸은 자기 자신이자 동시에 타자이며, 화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청자이며, 내레이션의 주인공 미키이면서도 미키가 아닌 이원적 존재로 등장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단일한 몸은 배제되고 분열된 몸이 관객의 몸을 경유하여 주체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작가는 두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출판물 『김무명』을 기반으로 영상 작품을 제작한다. 책 『김무명』은 인터뷰 당사자가 아닌 작가와 네 명의 배우들에 의해 낭독되며, HIV/AIDS 감염 사실을 알게 된 후의 고립감, 관계의 재정립에 관한 고민과 불안함이 담겨 있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설치작업 <김무명>이 천으로 가려진 긴 복도 끝에 사진과 텍스트를 설치하여 개별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만나게 설치되었다면, 영상 <김무명>에서는 공간에서 인물들이 서로 교차되며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흐르듯이 전달된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감염인의 경험을 글로 매개한 후 다시 사물이나 다른 인물로 가시화한다. 남웅 비평가는 작가가 이렇듯 사물과 타인에 페르소나를 부여하는 이유가 사회적 소수자가 당사자의 얼굴을 가시화할 수 없음에 대한 시각화라고 지적한다. 

버틀러에 따르면 이름은 사회적 구성물이며 이름을 지닌 자와는 무관한 방식으로 구성된다. 호명의 목적은 종속된 주체를 지시하고 확립하는 것이며, 주체의 사회적 윤곽을 시공간 내에 생산한다. 요컨대 이름은 주체의 것이지만 주체는 이름의 구성에 관여하지 못한다. 여기서 어떤 전복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트라우마와 연결되는 일종의 반복에 의해 가능하다. 전시의 제목은 계속해서 작가의 이름을 호명하도록 만든다. 이름은 호명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 타자에게 이름을 적극적으로 호명하기를 요청한다. 하지만 전시는 계속해서 ‘이정식’의 이름을 미끄러트린다. 이정식은 모든 작업의 기반이 되는 글을 쓴 소설가 이은주이기도 하고,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김무명이기도 하고, 갈 곳을 헤매는 미키이기도 하다. 이름은 돌고 돌아 다시 이정식으로 돌아온다. 

이정식은 사회적 호명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의 이름을 변주한다. 이러한 변주는 이정식의 작업 형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작가는 작업을 시작할 때 작업의 기반이 되는 텍스트를 쓴 후 이를 출판, 영상, 설치 작업 등으로 제작한다. 동일한 내용은 작품 형식에 따라 다시 가공되면서 각 형식들이 포착하지 못한/않는 내용이 발견되기도 하고 새로운 의미가 창출되기도 한다. 작가는 주체의 외부에서 타의적으로 발생하는 호명과 호명에 의한 낙인을 전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호명의 실패를 요청한다. 이는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가시화되지 않기를 요구하는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정치적 차별에 대한 저항처럼 보인다. 결국 《이정식》전은 ‘이정식’에 대한 전시이지만 ‘이정식’의 전시이기를 거부한다. 작가는 단일하고 평면적인 정체성의 규정을 거부하고 주체의 타자되기, 타자의 주체되기를 통해 끊임없이 정체성을 흔들고 교차시키며 나아간다. 
(유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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