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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이지훈 개인전 : 빈번한 단절
기간| 2020.10.21 - 2020.10.25
시간| 화요일-금요일 10:00–19:00 토요일-일요일 11:00 – 18:00
장소| 팔레드서울/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통의동 6
휴관| 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30-7707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이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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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과부하 시대의 탈인간성 회복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잠깐 동안 얼마나 많은 감각과 생각이 교차되었는가?

각자의 상황, 혹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감각과 사유의 메커니즘은 지체 없이 시동을 걸었을 것이다. 그 순간에서 자신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은 그 과정을 인지하는 것 그 자체였으니. 그러한 감각과 사유의 연계성은 인간의 반사적 신경계활동이자, 지나온 시대와 문명의 공통된 변화의 원리로 자리 잡아왔다. 주어진 상황을 지각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과정은 생명체들의 기본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현재의 인간과 문명적으로 경쟁하지 못했던 것은 사유의 발달과 정보의 문제였다. 유기체 중에서 체계적인 학습과 정보의 전달이 대를 내려오는 종은 인간이 유일했으며, 인과적으로 발달하는 기술과 매체에 결합되어, 우리의 입장에서 비약적인 문명의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우리의 물리적 신체는 과거와 유사할지라도 기술과 미디어로 활용할 수 있는 세계의 팽창이 도래하였고, 그로 인해 물리적 거리가 소실되는 것과 같은 역설에 놓이는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정보와 현실 이상의 현실적 수용은, 실제로 내 몸 앞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으로서 물리적 시공간의 한정보다는 지각과 사유의 영역으로 처리된다. 즉, 데카르트 이후로 근대까지 정설처럼 내려왔던 보여지는 것과 보는 것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지각의 절대성은, 이 시대에 와서 존재와 지각의 불확실성으로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의 시대는 모호해진 만큼이나 분절된 가치판단과 해석을 생산해내었고, 이지훈 작가의 작업세계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이 시대의 또 다른 지향점으로 진행되며, 지금의 에피스테메(episteme)를 ‘Overflow’로 풀이한다.

 

 그에게 있어서 현재는, 주체할 수 없는 과잉으로 유발되는 오류의 인간상으로 정형화되어있는 세계다. 속도를 가늠할 수 없는, 기술과 과학의 분야는 그것이 발전인지 과도한 욕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화를 만들어냈다. 앞서 말했듯이 그에 따라 생산되는 방대한 분량의 정보들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정교하고 빠르게 사람들에게 지각되어, 이전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데이터와 이미지에 연결되어 있는 보편적 인간들을 육성했다.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들은 조금만 손가락을 움직이면 이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보여줄 듯하고, 상대가 어디에 있든지 신호만 닿는다면 지구상에서 소통하지 못할 공간은 말소된다. 그뿐만 아니라 눈을 뜨고 있어도 주변 풍경을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를 가지게 된 이동 수단의 다양성들은 이전까지의 지각 경험을 넘어 팽창된 지각과 사유의 장을 이루게 되었다. 확장된 신체의 영역은 사람들에게 착각을 구체화시켰다. 

 

‘그 모든 것들이 인간이다.’

 

 작가 이지훈이 경계하는 지점이다. 현재의 우리가 체험하는 것들은, 우리 신체의 신경 범위 이상의 것을 저장하고 가지려 하는 과부하를 동반한다. 전통적으로 이야기되던 우리의 신체는 파괴되었고, 팽창된 지각은 기계의 테크놀로지를 빌려 디지털 정보로 남은 세계를 자신의 것이라 칭한다. 어디까지가 인간의 것이고, 어디부터가 우리 본연의 것이 아님을 인정할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인간인 동시에 기술 그 자체가 되었다. 모든 것을 삶의 혁신으로 중요시하여 긍정되었지만, 기술의 발전은 인간 그 자체의 발전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에게 연결된 데이터와 이미지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우리의 인지가 무한에 가까울 수 있다는 오류를 만들어냈을 뿐이며, 우리가 본질적으로 소유하는 것들의 총량은 여전히 이전과 다름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외면한다. 누구나 완벽할 것으로 예상하는 전자기기조차도 기억장치가 유한하기에 데이터들을 지속적으로 이동시켜 보관하여야 하며, 우리는 그 과정의 일부를 행할 뿐이다. 기계가 우리의 기억과 정보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의 정보처리 과정의 일부가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상황에서 인간만을 위해 미래로 향하는 절대적 가치와 사유가 어디에 자리잡아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지점에서 작가가 선택한 방법론은 현상으로서의 마비와 단절이었다.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부분들은 끊임없이 작동하고 신호를 보내는 기계적 연결성을 갖고 있지만, 그것들이 우리에게 수용될 땐 의도된 단절을 연출한다. 작품의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Led fan은 작품의 시공간적 인지를 위한 동력원이자, 우리가 자신의 사유로부터 단절되는 순간을 경험하는 역설의 장치로서 작동된다. 작용되는 작품을 통하여, 과도하게 융합되어 본연의 것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현재를 마비시키고 지각과 사유의 신호를 단절시켜, 자신의 존재와 한계의 인식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교차성(chiasma)에서 Led fan은 작가의 의도가 강력하게 투영된다.

 

 작품의 전체적인 모습은, 빠르게 회전하여 명확하지 않은 형태의 날개와 다수의 Led 조명으로 인해서 세부의 형태들은 전체로 통합되어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연상되는 시각성을 보여주지만, 조금 더 다가가서 우리의 감각을 사용하게 되면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군집들을 발견하게 된다. 통상적인 사람의 지각범위를 벗어나는 부품들의 속도가 보여주는 게슈탈트적 이미지들로 인해, 우리는 그 인지의 경계선 안과 밖에서 전혀 다른 감각적 경험을 제공받는다. 작품으로부터 흘러나와 느껴지는 바람과 작동하며 발생되는 기계의 소리는 관람객에게 정체되어 있지 않은 일상 감각의 과잉을 제공한다. 특히나 빠른 속도로 회전하여 자신의 정지된 형태를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fan과 밝은 내부 조명의 대열은, 보는 이도 모르는 새에 신경의 피로감이 극대화되어 사유의 마비를 경험하게 만든다. 이 작품이 작동하는 과정과 이미지의 분별에 신경의 에너지를 집중한 탓에, 순간적으로 감각이상의 의미포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이 바로 작가가 의도한 지각과 사유의 단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며,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시공간을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 안에서 우리의 지각은 우리의 것이었지만, 그 인지가 자신의 사유에 완벽하게 전달되지 못하는 현상을 체험하며,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오류를 인식하게 되는 작가의 의도를 따르게 된다. 

 

 보는 이의 의도치 않은 지각적 단절이 작가가 설계한 작업의 움직임과 연결로 유발된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Led fan의 회전과 빛, 공기의 흐름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모두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파동(wave)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과도한 파동은 우리의 신경계를 감각으로 지연시켜 타자화된 단절을 이끌어낸다. 관람객이 인지하기에 앞서서 작품의 논리구조 자체가 오류로부터 시각화되고 있는 것이다. 오류로부터의 진행은 또 다른 오류를 만들어내고 그 일련의 과정들은 끊임없이 증식하여, 작가가 연구하는 우리들의 삶임과 동시에 차연(Différance)으로서 무한하게 나아가는 새로운 인식 방법론의 신호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지훈 작가의 작업세계는 인지의 가역성(reversibility)에 자리잡고 있으며, ‘체험된’ 감각과 ‘체험하는’ 사유의 지속적인 교차는, 기술과 정보의 맹신으로 유발된 탈인간성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물음을 던져올 것이다. 

 

이장로(기획자,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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