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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김정인 개인전 : 견고하지 않은 땅을 딛고 서기
기간| 2020.11.05 - 2020.11.18
시간| 12:00~19:00
장소| 온수공간/서울
주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6-7/온수공간
휴관| 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70-7543-3767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김정인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서로를 붙잡는 이미지
    2020 oil on canvas 116.8 x 91.0 cm

  • 거울이 동반한 혼란
    2020 oil on canvas 145.5 x 112.1 cm

  • 습기가 가득한 곳
    2020 oil on canvas 193.9 x 390.9 cm
  • 			#전시 서문
    무르고 위태로운 세계에서도 
    
    황윤중(자유기고가)
    
    잔해만 남아 거리에 버려진 거울, 깨진 유리잔, 금이 간 창문, 오랜 시간 누수로 멍든 것처럼 얼룩덜룩한 천장. 성치 않은 사물들의 위태로운 몸을 바라본다. 이 장면들의 제목에서 유추하자면 사물들에게 어떤 ‘급류’가 들이친 것 같다. 화면에서 급류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그림은 급류라고 부르는 어떤 힘의 운동이 작용한 결과들을 보여준다. 그 힘에 의해 사물들은 손상되고 버려지고 방치된다. 
    
    이 급류는 인간에게도 작용한다. 인물들은 나무와 바위 뒤로 몸을 숨기고(<숨은 남자>(2020)), 무거운 물속에 잠겨 있고(<잠식된 남자>(2020)), 벽면 속에 숨은 그림처럼 희미하게 존재한다(<다양한 저항>(2019)). 때로 급류는 강한 바람의 형태로 불어온다(<탈색되는 남자>(2019)). 화면에 몰아치는 습한 바람에 누워있는 인물의 흉부와 복부는 휘저어지고 머리는 유체이탈이라도 하듯 휩쓸려 나간다. 바람에 떠내려가지 않으려 작은 기둥을 붙잡고 있는 손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미지의 급류는 풍경에도 작용한다. 풍경은 벽지 마냥 붙였다 떼어낼 수 있는 불안정한 지위를 보이곤 한다. 풍경의 면들이 낡은 벽지나 도배지처럼 쉬이 찢어지고 해지며 그 뒤에는 또 다른 풍경면이 존재한다. 이때 화면은 여러 겹의 벽지가 붙어 있는 벽면처럼 기능한다(<우리를 지켜줄 나무 강아지 4>). 풍경은 얇은 천이나 벽지 한 장의 두께를 드러내며 납작해지고 가벼워진다. 하늘인 줄 알았는데 헤진 모서리를 들추어보니 뒷면에 돌담이다(<서로를 의존하는 대상>(2019)). 언뜻 3차원의 공간성을 묘사한 듯 보이던 화면은 2차원 평면들로 축소된다. 풍경은 위태롭다. 풍경이 낡은 벽지처럼 찢어지니 그 안에 위치한 존재들의 지위 역시 위태롭다.
    
    화면 전반에 배인 습기로 본래의 성질을 잃고 물러진 몸들은 한 번 더 위태롭다. 날카롭지도 베이지도 않을 듯 무른 유리는 간신히 반사의 기능만 하며, 젖은 불은 무얼 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른 천정은 언제 머리 위로 녹아내릴지 모른다. 질척이는 땅 위에 다리는 굳건히 서지 못 한다. 무른 공기가 스민 무른 살과 풍경은 한 겹 두 겹 본래의 색을 잃고 어두워진다. 급류에 젖은 세계는 흐리고 무르며 불안정하다. 
    
    이 세계에서 ‘풍경과 사물과 인간’은 모두 불안한 운명 공동체의 일원들이다. 다 같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하지만 그의 화면은 오직 장례식만이 일어나는 공간이 아니다. 홀로 버티기 어려운 그들은 연대한다. 
    
    <서로를 붙잡는 이미지>(2020)는 급류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버티려는 몸짓들의 집합을 보여준다. 질은 땅에서 무언가를 끌고 나가려는 자세의 인물, 물컹한 뻘 위에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와 몸이 잠긴 채 표정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는 인물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애써 버티고 있는 동병상련의 신체들을 ‘벽지를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한 화면에 모으며 연대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때론 서로의 몸을 ‘접붙이는 방식’으로 연대한다. 인물의 머리와 나뭇가지가 한 몸으로 이어 붙고, 하나의 얼굴 곁에 또 다른 얼굴이 숨은 그림처럼 결합된다(<우리를 지켜줄 나무 강아지 2>(2019), <우리를 지켜줄 나무 강아지 4>(2019)). 또는 한 인물의 등에서 유령처럼 희미하게 솟아난 팔이 트럭 안 이삿짐을 옮기는 이에게 우산을 씌워준다(<이주 현장>(2019)).   
    <풍경과 남녀>(2019)에서는 건물 벽면과 나무와 인물의 경계를 넘나들며 스치듯 운동하는 붓질로 각 신체들 사이에 서로를 붙잡는 마찰력을 발생시키면서 회화의 공간에서 유효한 상호의존적 건축술을 수행한다. 
    풍경과 사람과 사물은 비록 견고하지 못한 임시적 형태로 나마 서로를 붙잡는 공동의 몸을 구성해 급류를 버텨낼 수 있는 관계의 힘을 강화시킨다. 
    
    버티기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들도 일어난다. 
    급류의 정체를 탐사하기 위한 길을 나서려는 듯 강한 바람에 하늘의 공기와 지상의 식물들이 요동치는 어둠 속에서도 차분한 태도로 채비하고(<채비하는 남자>(2020)), 보이지 않는 물속의 운동을 읽어내 듯 장막 안으로 낚싯대를 넣어보고(<습기가 가득한 곳>(2020)), 수많은 거울들로 가로막힌 길을 뚫고 나무를 향해 다가가려 시도한다(<나무에게 가는 길>(2020)). 
    도시 스스로 몰아낸 자연의 일부이지만 조경을 위해 다시 소환하여 이용하는 존재가 바로 나무이다. <나무에게 가는 길>과 <거울이 동반한 혼란>에 등장하는 원형 거울들은 이 나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기능한다. 두 그림의 거울 앞에 위치한 인물은 분명 야외에 위치함에도 거울은 도시 내부에 조성된 실내 공간들을 비춘다. 인물은 경계가 불명확한 곳, 실내이자 실외인 공간에 자리한다. 이제 여기가 야외인지 실내인지 알 수 없다. 거울 속 이미지는 공간에 대한 감각을 교란한다. 더불어 여러 단면들로 조각나고 금이 간 하늘은 혼란감을 증폭시킨다.
    인물은 교란의 주체인 거울을 뚫고 나아가려 시도한다(<나무에게 가는 길>). 하지만 질은 땅 위로 틈 없이 빼곡히 늘어선 거울의 몸체와 거울 안에 비친 이미지들은 시각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나무에게 가는 길을 이중으로 가로막는다. 그의 몸짓에 틈을 내주거나 깨지거나 제거되는 거울은 보이지 않는다. 거울 방패는 견고하다. 
    
    우리는 그가 제시하는 장면들에서 인물들이 행하는 나름의 탐사가 성공한 결과를 목격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장면들은 가망 없음으로 치닫지 않는다. 자기 파괴나 대상 파괴로 치닫지도 않는다. 그들은 때론 우직하게 버티고, 때론 소심하게 저항하고, 때론 귀엽게 활기를 이어나가며 동병상련의 존재들과 연대하는 장면에 도달한다. 비록 처지는 위태로우나 활기가 만만치 않다. 이 활기는 무른 세계의 습기에 상하지 않고 오히려 점토를 다지듯 단단하게 다져진 그의 나무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습기를 소화하고 재신체화 해낸다(<나와 같은 나무>(2019)). 그의 무르지만 굳건한 나무는 쉬이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몸에는 쉬이 물러지지 않을 생명력과 활기가 작용하고 있다.
    
    
    
    #작가노트
    
    개발 현장은 나에게 신기함과 같은 생소의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거대한 건축물 후면에 보이는 삭막한 황무지 풍경은 내면에 큰 불안감까지 자리하게 했다. 다른 온도의 감정 공존은 시간이 지나 점차 기억에서 희미해진다. 반복적으로 대체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빠르게 진행되는 변화와 불안에 원인을 둔다.
    
    반복적인 사회 구조의 변형과 대체는 혼란스러움을 동반한다. 복잡함으로 인해 나는 탈색의 급류로 밀려나게 된다. 그리하여 희미해졌던 불안의 기억이 상기되며 변화가 적은 동네에서 형성된 ‘더딘 성향’이 감각된다. 이러한 한계점 인식과 폭력적인 수용 요구는 빠르게 진행되는 현상에 대한 버거움을 느끼게 했다. 이렇게 내면에 축적된 반감은 부정적인 태도와 시각을 작동시켰다. 외곽으로 밀려 겉돌던 나는 반복적으로 바뀌는 대체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즉각적인 부정 반응을 유예한다. 동시에 스스로를 계속 변두리에 위치시킨 뒤 배회로써 상황을 살피게 한다.
    
    나는 현시대를 물컹하고 유동적인 액체로서 감각한다. 물컹이는 땅으로 표현된 액체성은 반복적으로 변이하는 것을 비꼬아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그리고 부정적 인식의 범주는 점차 확장되어 변동을 관장하는 이면 세력에 대한 궁금증에 다다른다. 그 결과 변화를 수용하게끔 하는 강요와 압력은 개인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간주된다. 그리하여 나는 폭력적인 급류에서부터 개인을 사수하는 태도를 취한다. 또한 지향점에 도달시키려는 붓질은 습기로 인해 대상이 흐트러지지 않길 바라는 염원을 보탠다.
    그리는 행위는 변화의 물결로 습하게 젖은 땅을 버텨내기 위한 방책이다. 부정적 내면은 붓이라는 매개를 통해 캔버스 위로 산재된다. 화면 위로 던져져 적절히 흩어진 내면은 가치가 하락하고 나약한 소재들로 구성된 이미지 위에 쌓여진다. 이렇게 형성된 층은 뭉개지고 쪼개지는 몇 가지 과정을 거치며 저항적 이미지로 변환된다. 외곽을 넘나드는 붓질을 통해 하나로 엮인 이미지와 버텨내려는 저항적 이미지, 힘을 합쳐 저항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로써 내면은 외부로 발현된다. 육안으로 해체되어 보이는 경계는 역으로 결집하는 움직임으로도 파악되며, 저항 가능성을 품은 화면으로 나아간다.
    
    
    글       : 김정인, 황윤중
    번역     : 강영주
    디자인   : 모눈스튜디오
    촬영     : 온아트스튜디오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 아트맵에 등록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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