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어디서부터 날아 들어온 – 조금 쓸쓸한 빛의 도시 속에서
유현아
 
작년 5월 어느 작은 책방에서 매수전의 그림을 보았다. 복순(매수전과 함께 사는 반려견)이었다. 책들 사이에 숨어있다가 느닷없이 나타나는 환영처럼. ‘저녁이 사라진 삶에 야경은 전등의 통증들’이라는 시의 문장이 떠올랐다. 밤의 빛은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고 어둠을 감싸 안은 듯 보이지만 사실 도시의 슬픔을 감추기 위한 포장일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빛과 어둠은 그런 것이었다. 아이였을 때 걸었던 시골길은 너무 깜깜해서 밤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전구처럼 빛나던 별들은 그래서 더욱 밝고 외로워 보였다. 그리고 무서웠다. 이 무서움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어떤 빛과 어둠은 공존하지만 함께할 수 없는 어떤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지금 여기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일상에서는.
 
매수전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꾸준한 탐험을 이어온 젊은 작가로 보이지 않는 빛을 쫓아 한발 한발 내딛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드로잉 작업 <돌의 일기> 시리즈를 통해 그림과 글의 기억에 대해 보여준다. 유형의 사물이 무형의 이미지로 전환되면서 일상이 재구성되는 효과를 노린다. 매수전이 표현하는 윤슬은 오직 달빛이나 불빛에 비치는 잔물결이다. 햇빛에 비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 잔물결이 매수전의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일렁임이라고 믿는다. 지금, 여기를 딛고 사는 젊은 작가에서 일렁임은 의미를 찾기에 너무 많은 두려움일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기억은 텍스트의 일환일 수 있다.
 
나는 어느 날, 책상 위에 놓아둔 돌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밑에 하루의 일을 간단히 적어 넣었다. 요새는 땅 밑을 자주 보고 걷는다. _ 돌의 일기 중에서
 
매수전은 올려다보지 않고 내려다본다. 보이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물들의 이미지를 돌로 표현했다. ‘돌’은 여러 가지 형태와 색으로 표현된다. 낯설다. 돌에 입김을 불어 넣듯이 텍스트로 ‘돌’에게 의미를 부여했다. 이 의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끊임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쓴다. 땅을 보고 걷는 사람 매수전은 손을 보고 쓰고 그린다. 그의 이 두 가지 행동이 빛과 어둠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함께 공존하는 모든 사물에 경의를 표하며 상상력의 확장을 일으킨다.
 
나는 젊은 작가 매수전의 첫 개인전을 함께 준비하는 것으로 첫발을 내딛는 경험을 함께한다. 그의 작업은 혼자 하는 것이지만 혼자 하는 것을 뛰어넘어 다음의 함께함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일상과 함께했던 낯익은 것들이 사라지면서 도시의‘캄캄한 빛’에 대해 집중하고 흔한 ‘돌’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작업을 한다.
 
흔들리는 희망, 맥빠지게 하는 의혹이 되살아나 아직도 간혹 내 영혼에 혼란을 일으키고 슬픔으로 가득 채운다.
_ 장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중에서
 
순간마다 흔들리고 있다. 도시의 삶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없는 희망을 찾고 있는 삶이 지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 루소의 글처럼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수전의 첫 개인전 <캄캄한 빛>은 보이지 않는 희망, 맥빠지게 하는 현실, 혼란의 이미지 속에서 붙잡고 있는 실낱같은 긍정일 수 있다. 그것이 때론 의미를 알 수 없는 추상으로 보일 수 있다. 그것마저 없다면 너와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빛 때문에 나는 얼마나 많은 풍경을 놓치고 있는가, 라는 작가의 질문을 통해 일상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매수전의 개인전 <캄캄한 빛>은 응원하고 있다. 당신 지금 잘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