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XHIBITION
김현정 : 스물 일곱
기간| 2021.05.13 - 2021.05.26
시간| 10:00 - 18:00 일 휴관
장소| 모리스갤러리/대전
주소| 대전 유성구 도룡동 397-1
휴관| 명절 별도공지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42-867-7009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김현정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다른 시선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12.1 x 145.5 cm

  • 놀이
    2021 캔버스에 아크릴 91.0 x 116.8 cm

  • Ston
    2020 캔버스에 아크릴 53.0 x 45.5 cm

  • 선악과
    2021 캔버스에 아크릴 53.0 x 45.5 cm
  • 			‘밈’을 통해 바라본 동시대 문화현상
    _우리 삶에 있어 진정한 의미와 방향에 대해 묻다
    
    홍경한(미술평론가)
    
    
    1.
    ‘밈(meme)’이 가상적(hypothetical) 존재라면 유전자는 실존재이다. ‘밈’은 넓은 의미에서 모방과 복제라는 틀에서 문화적 요소들을 전달하는 비유전적 기호와 코드이다. 일반적으론  SNS 등을 통해 특정한 콘텐츠를 패러디하며 즐기는 문화현상(공동체 놀이)을 뜻하기도 한다.
    
    작가 김현정은 ‘밈(meme)’을 작품의 근간으로 한다. 문화의 복제 역할을 하는 중간 매개물인 ‘밈’을 인간사회에 투영시켜 새로운 문화형태를 다룬 조형이다. 이를 작가의 발언대로 하자면 ‘밈’이라는 문화 현상을 통해 동시대 자본주의의 흐름과 그 흐름 내에서 인간의 문화는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 또 변화된 문화 안에 개인의 위치는 어디쯤에 있는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생각의 대부분은 잠재적인 ‘밈’에 머물지만 표현하는 순간 ‘밈’은 생산되고 활동력을 지닌다. 반대로 드러나지 않을 경우 ‘밈’의 존재는 없다. 때문에 회화와 설치로 생산되는 작가의 작품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밈’이다. 인간 사회의 다양한 현상과 모습들을 포착한 문화매개로서의 기능에 부합된다.
    
    흥미롭게도 그의 작품 안에서 인간들(사회가 요구하거나 욕구하는 것들을 해결 및 성취하지 못한 ‘밈’과 같은 개인들)이 모여 ‘놀이 행위’를 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간다. 단순한 구성 내 어색한 스냅사진 같은 장면 속에서 정적으로 존재하는 행위의 주체들은 작가만의 관점으로 재해석된 존재들이며, 다소 풍자적인 면모를 띤다.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김현정은 그 끄트머리마다 특유의 메시지를 앉혀놓고 있다.
    
    작품만으로도 여러 결을 느낄 수 있으나 그 중에서도 작가의 관심은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집중한다. 물질지배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 세상 속 그들이 만들어내는 장면들을 하나의 ‘밈’(앞서도 언급했듯 화면 속 등장인물들이 곧 ‘밈’이고 명품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기호이다)으로 변용하여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하나의 종교마냥 자본을 숭배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의 작품 곳곳에 들어차 있다. 명품 허리띠와 티셔츠 따위를 걸친 일단의 사람들(사실상 무척이나 촌스러운 양태를 하고 있는 이 무리들은 특정성이 배제된, 같은 얼굴을 한 익명성이 두드러진다)이 주인공인 <Thirsty>(2020)를 비롯해, <동그라미처럼 공허해>(2020), <밈 노마드(memem nomad)>(2020), <ston>(2020) 등의 작품이 그렇다. 또 다른 작품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된다>(2020)나 <가짜여도 좋아>(2019), <now is>92019) 등에서도 앞선 기술(記述)의 적용은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작가는 젊은 세대답게 SNS에 관한 시선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상의 거대한 대륙이고, 하나의 문화임에 틀림없지만, 참과 거짓을 분간하기 어려운 가공된 세계에 경도된 인간 군상들과 소유욕과 과시욕, 유무형의 자산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간 불균형, 무엇이든 SNS상의 화제로 연결 짓는 현실까지 덧댄다.1)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하나같이 자본주의에 관한 작가의 관점과 현대의 소통방식에 대한 시선을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처럼 김현정의 작업은 자본주의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과 관계가 깊고, 물질적 풍요로움 대비 공허함과 소외감, 헛헛함, 부러움, 고민, 욕망 등이 투영되어 있다. 장면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이들의 감정도 녹아 있으나, 종착지는 명료하다. 바로 “자본은 가지면 물질적으로 행복감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감정적 불안, 공허함, 소외감 등을 부추기며 다양한 심리적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2)
    
    
    2.
    우리가 시각으로 받아들여 느끼고 그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흉내 내고자 하는 본능은 인간이 지닌 숭고한 기능이며 문명과 문화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의 과정 또는 완성체를 흔히 우리는 ‘창조’라 하고 더 넓게는 예술이라 부른다. 이는 자연스러운 발로라는 점에서 예술은 우리 인간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쉬르 리얼리스트들은 자본을 토대로 한 과학문명이 만든 물질적 풍요로움과 편리함이 낳은 결과가 가공할만한 살상무기가 되어 돌아왔음에 충격을 받아 현실에서 초월하거나 무의식의 세계로 진입하고자 했다. 20세기 초 다다이스트들의 극한 부정 역시 자본주의와 합리주의, 과학-지성주의적 인간이 쌓은 문명의 발달에서 찾을 수 있다. 하물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하나로 묶어 자본의 총아가 곧 예술이라던 팝아티스트들의 계보를 뒤적이는 것도 자본주의와 완전히 무관한 건 아니다.
    
    김현정의 작업 또한 위와 같은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다. 구체적 동기는 파악할 수 없으나 어떤 사안에 대한 문제의식이 곧 그에겐 예술의 조건인 건 틀림없다. 인과관계에 대한 정보는 없어도 상호 연관된 체제를 현실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타자에겐 인식 가능했던 세계를 실제의 세계로 재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스스로에겐 시장사회 속으로 동원되는 현재에 관한 성찰의 통로를 제공한다. 예민한 예술가에게 문화적 현상이라고 다를 리 없다.
    
    
    그는 자신(어쩌면 우리)을 둘러싼 현상을 ‘밈’을 통해 전달하고, 우리 삶에 있어 진정한 의미의 방향을 되묻는다. 의미의 방향, 이것이 그의 작품에 담긴 궁극적 메시지이다. 비록 시대가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와 조형방식 또한 상이하지만 김현정은 현실의 문제를 ‘밈’을 통해 판독해 회화와 설치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획득 가능한 것 또 하나는 ‘다른 관점에서 헤아리기’이다. 작가의 표현처럼 문화는 최종 목적지나 완결은 없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폭을 확장해 준다.
    
    그런데 필자의 눈에 김현정의 ‘밈’ 관련 연작은 <관종들의 자화상: 우울증>(2019)이나, <죽음의 문 앞>(2019), <현대인의 자화상: 공황장애>(2019)와 같은 몇몇 작품에 비하면 호소력이 약하다. 다소 시니컬한 인상을 심어주고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이성적 영역에서의 건조함도 없진 않다.
    
    그러나 <관종들의 자화상: 우울증>, <죽음의 문 앞>, <현대인의 자화상: 공황장애>로 이름 붙인 이 세 작품은 확실히 다르다. 자본에 대한 갈망과 갈등 그리고 다양한 감정들 대신 솔직한 고백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령처럼 부유하는 그림 속 주인공은 작가의 자아와 정체성을 위협당한 불안함의 초상이다.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일 수는 있어도 도저히 극복 불가능해 보이는 내적 심리를 이성의 뒤에서 그려냈다. 그래서인지 고뇌와 번민, 존재의 근원적인 것과 변하는 것 사이에 놓인 인간상이 시각 너머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됨을 볼 수 있다. 그건 문맥상 단순한 슬픔과 좌절을 넘어 자기 본질의 역행이며, 자기상실(loss of self identity)이다.
    
    향후 그의 작업이 동시대의 문화적 현상을 전달하는, 시대흐름을 반영하는 매개로서의 역할에 충실 하는 것도 나쁘진 않으나, 개인적으론 하단에 언급한 세 작품의 결을 보다 옹립시킬 수 있는 길을 걷는 것도 의미적일 수 있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문화적 현상이야 누구든 예술의 소재로 끌어올 수 있으나 이 세 작품들이야말로 김현정 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범주이기 때문이다. ⓒ
    
    
    
    1) 이쯤 이르면 SNS의 폐단을 다룬 영화 <팔로우 미>를 연상하는 것도 무리는 없다. 타인의 공포까지 놀이로 삼는 것은 작가 작품의 소재는 아니지만 SNS의 맹목적 현상과 폐단을 놓고 보면 연관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2) 작가노트 중
    
    
    (출처=모리스갤러리)			
    ※ 아트맵에 등록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팸플릿 신청
    *신청 내역은 마이페이지 - 팸플릿 신청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6부 이상 신청시 상단의 고객센터로 문의 바랍니다.
    확인
    공유하기
    Naver Facebook Kakao story URL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