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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제니 조 : 큰 창을 향해 반짝이는 그림자 Illuminating Shade for Big Window
기간| 2021.04.29 - 2021.06.12
시간| 10:00 - 19:00
장소| 갤러리기체/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5가길 20
휴관| 일요일,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70-4237-3414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제니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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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회화가 미래다’: 제니 조의 대안적 회화의 조건>





이채은



제도로서의 회화



‘회화는 오늘날 유효한가?’ 이는 제니 조가 이번 개인전 <큰 창을 향해 반짝이는 그림자>을 통해 화두로 내세운 질문이다. 이 메타 비판적 질문은 다양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다다이즘에서 개념미술로 이어지며 가속화된 미술의 개념적 전환 이후 매체 자체에 내재된 어떤 가치를 찾는 시도가 무의미해졌다. 오늘날 작가에게 매체란 본인의 개념적 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응용·창조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는데, 이런 상황에서 ‘회화’라는 카테고리의 의의가 모호해진 것이다. 한편, 미국의 비평가 더글라스 크림프가 1981년에 <회화의 종말(The End of Painting)>이라는 글에서 진단했듯 회화는 1960년대 이후로 수많은 비평가와 작가들에 의해 이상주의와 엘리트주의 및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산물로 비판받아왔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회화는 의미있는 카테고리로 존속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회화가 생성해낼 수 있는 새로운 의미는 어떤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이제는 고전이 된 BBC TV 시리즈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 (1972)에서 존 버저(John Berger)는 유럽의 회화 전통을 뒷받침하는 일련의 규칙, 관습 및 조건을 파헤쳤다. 그는 유화나 원근법과 같은 회화의 기술적 장치에 대한 설명과 일련의 상호연관된 이데올로기 – 가령 자본주의, 가부장제, 인본주의 및 식민주의 – 의 발전에 회화가 미친 영향을 탐구하면서 관객이 회화의 보편성, 객관성, 자율성에 대한 신화적 환상을 깰 수 있도록 했다. 버저의 이러한 노력은 1960년대 이후 개념미술, 페미니즘 미술, 제도비판적 미술 등의 등장과 함께 가속화된 미술의 전통 혹은 ‘제도로서의 미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수십년에 걸친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화의 전통과 이를 동반한 관념들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작가를 천재적 개인으로, 작품을 유일무이한 개별의 창조물로 보는 낭만주의적 인본주의의 시각은 미술 시장의 핵심 논리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고, 타자에 대한 상품화 및 (성적) 대상화의 경향도 특히 광고나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미술 및 미술사의 ‘글로벌화’에 대한 논의가 크게 확장하고 있으나 미술계과 미술사학계에 뿌리깊게 침투해 있는 식민성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미국에서 교육 받은 한국 여성 화가라는 정체성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서구 전통과 제니 조 작가는 꽤나 ‘어색한’ 관계에 놓여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에 작가는 본인의 정체성을 기존 회화의 전통 안에 단순 삽입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관점에서 회화의 언어 자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데 몰두한다. 즉, 제니 조 작가의 이번 작업들은 이러한 본인의 문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상술한 담론의 변화에 기반하여 회화의 대안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의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본 글은 이번 전시에서 드러나는 제니 조 작가의 방법론적 특성을 ‘차용’, ‘다층성’, ‘관계성’으로 파악하고 어떻게 이 개념들이 회화의 ‘종말’ 이후의 회화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새로운 회화의 조건: 차용, 다층성, 관계성 



현재 갤러리 기체에 전시되어 있는 작업들은 전부 회화인데, 그 중 상당수가 서양 미술사의 주요 화가 및 그의 작품들을 차용하고 있다. 이런 과거로의 재귀는 일견 시대착오적인 것 – 회화의 영광스러운 날들에 대한 낭만적 소회 – 으로 읽힐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셰리 레빈(Sherrie Levine)과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이 차용을 통해 원본의 내재적 가치를 무효화하고 가치가 생성되는 원천으로서 사회문화적 맥락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경우를 떠올려 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제니 조의 차용은 과거에 대한 향수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통에 대한 불경한 또는 유희적 태도보다는 시공간의 다층성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이러한 회화의 개념은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와 비교해볼 수 있는데, 팔림프세스트란 고대에 원래의 글 일부 또는 전체를 긁어내거나 흐릿하게 한 후 새로 쓴 문서를 일컫는다. 이 때 기존의 글자들은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아 그 흔적이 남아있게 된다. 표준화, 직선화, 분절화된 현대의 시공간 관념과 달리 불연속적인 시공간이 중첩되어 공존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제니 조는 그가 평소에 접했던 회화, 영화, 또는 문학 작품들을 지표삼아 그 안에서 마주한 다양한 시공간들을 회화 속으로 끌어온다. 가령 <(not yet titled)>(2018-2020)는 르네상스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Lamentation of Christ)>(1480)를 전후 미국 작가 로버트 모리스가 1989년에 차용해 그린 <금지의 종말 또는 더치 슐츠의 죽음(Prohibition’s End or the Death of Dutch Schultz)>을 모델로 하여 그린 작품이다. <발코니(마그리트 이후)>(2017-2020)와 <힘겨운 도항(마그리트 이후)>(2017-2020)은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동명의 작품을 차용한 것으로, 원작에서 특정 디테일(발코니의 난간과 배가 폭풍우 속에서 항해하는 그림 속의 그림)을 추출해 다른 시공간의 파편들과 함께 재구성했다. <정물화(돈 이후)>(2017)는 프랑스 영화감독 로버트 브레송의 <돈(L’argent)>(1983)에 나오는 한 장면을 기반으로 그린 것인데, <돈> 또한 1911년에 레프 톨스토이가 쓴 소설 <위조 쿠폰(Fal'shivyi kupon)>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한편 <일출(터너 이후)>(2020)은 초월적 성격의 숭고미와 대기의 변화하는 순간성을 화합한 영국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하단에 트롱프 뢰유(trompe-l’oeil)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 제작 연도 표기(2020)를 가미함으로써 초현실주의적인 층위를 더했다.



많은 경우, 작가가 확대하거나 추가 및 수정한 요소들은 작가 본인의 중간자적인 정체성, 여러 지역을 떠도는 유목민의 삶, 서로 다른 문화권이 복잡하게 만나는 만남의 순간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예를 들어 <발코니(마그리트 이후)>에서 화면을 가득 채우는 난간의 이미지는 관람객의 공간과 꽃이 부유하는 모호한 추상의 공간을 분리하는 울타리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열린 구멍 사이로 이를 연결시키기도 하는 양면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의 경우 작가는 원작의 침상의 자리에 배를 그려넣었는데, 이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사냥꾼 그라쿠스(Der Jager Gracchus)>(1931)에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 소설에서 사냥꾼 그라쿠스는 망자도 산자도 아니며 영원히 바다를 떠도는 운명에 처한 것으로 그려진다. <병든 예언가와 늙은 마법사(장 밥티스트 우드리 이후)>(2020)는 라퐁텐 우화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잘 알려진 프랑스 화가 장 밥티스트 우드리의 <늑대와 양(Wolf and Lamb)>(c. 1751)을 재구성한 것으로,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의 치명적인 만남의 순간을 재현한 것이다. <회화가 미래다>(2017-2020)는 좀 더 작가의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레퍼런스를 활용했다. 이 정물화에 등장하는 종교적인 공예품을 비롯한 여타 장식품들은 불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작가의 할머니가 미국과 한국에서 다양하게 사 모은 것들이다.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다양한 도상들을 복제한 것들, 작은 프란시스 교황 조각상, 눈사람 모양의 크리스마스 기념품, 그리고 작품이 만들어진 시일의 단서가 되는 시계와 달력 등이 서로 다른 시공간을 복잡하게 연결하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를 가로지르는 작가(와 작가의 할머니)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더 나아가 제니 조는 작품의 전체적 짜임을 구상하고 배치하는 데 있어 작품과 작품 사이의 관계성또한 드러내고자 했다. 각각의 작품들은 아주 다른 모티프와 스타일을 활용한 것으로 보이나, 이것들을 전시장에서 함께 놓고 보았을 때 작품들 사이에서 어떠한 의미의 주고받음이 일어날 수 있게끔 고안된 것이다. ---의 침상/배 옆에 놓인 <베드룸 페인팅>(2017-2020)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베드룸 페인팅>은 젊은 미국의 소설가 오테사 모쉬페그의 2001년 9/11 테러 직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 소설 <휴식과 완화의 한 해(My Year of Rest and Relaxation)>(2018)에 영감을 받아 그려진 것인데,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세상에서 스스로를 철회하고 싶어 각종 약물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잠을 자며 사는 삶을 설계한다. 이 이야기는 <베드룸 페인팅>에서 생기 없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침실 이미지로 표현되었으며, ---의 그라쿠스/예수의 이야기에 현대적인 층위를 덧붙이는 기능을 한다. <병든 예언자와 늙은 마법사(장 밥티스트 우드리 이후)>와 <일출(터너 이후)>의 병치도 흥미롭다. 두 작품 모두 동적인 붓질을 활용한 반추상의 형식과 단색조 혹은 매우 적은 수의 색조를 활용하여 아주 작은 스케일로 그렸으며, 자연의 법칙 – 지구의 자전과 약육강식의 법칙 – 에 대한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유도해 낸다는 점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제니 조의 회화 작품들은 하나의 느슨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의미와 정서의 확장과 변모를 다각도로 이끌어낸다.

(출처= 갤러리 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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