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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오원배展: 실존의 휴머니즘, 회화의 휴머니즘
기간| 2017.11.02 - 2017.12.23
시간| 11:00 - 19:00
장소| OCI 미술관/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
휴관| 일, 월,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34-044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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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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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을, 오원배의 열일곱 번째 개인전이 개최된다. 지금까지 40여 년의 화업을 쌓아오는 동안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었다. 탈을 쓴 모습으로, 금수와 같은 형태로, 때로는 알몸만 겨우 면한 헐벗은 몸으로 등장하는 그의 작품 속 인간은 단독자(單獨者)로서 세상에 대응하며, 주어진 환경을 애써 견디어 냈다. 한결같은 주제 의식을 견지하는 그의 작품 속에서 유난히 자주 모습을 보이는 인물은 바로 ‘청년’이다. 온몸을 뒤틀며 고뇌할지언정 정주(定住)하지 않는 자, 청년은 세상에 대한 첨예한 분투와 자기 극복의 의지를 분(扮)한 작가의 페르소나(persona)에 다름 아니다. 늘 청년 같은 작가 오원배. 그는 매 전시마다 다른 실험을 시도하며 양식의 변화나 매체에 대한 연구를 꾀하여 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압도적인 크기의 작품으로 전시장을 호령하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진단해 본다.
     
    이번에 마주하게 될 그의 작품은 모두 최근 일, 이 년 사이 만든 신작이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대작으로 관객을 덮칠 듯 맞이하는가 하면, 1층 벽면에는 한 폭이 무려 32m짜리 종이 위에 호탕하게 그림을 그렸다. 인간 존재의 실존 문제를 다루어 온 작가이건만, 그의 화면에 처음으로 인조인간도 등장하였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환희의 춤을 추는 매끈한 금속체의 로봇. 그 뒤편으로 기계보다 더 기계와 같이 획일화된 몸짓으로 인간들이 줄지어 있다. 거대한 파이프와 가스통 사이로,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의 산업 현장에 유폐된 듯한 인간 군상의 모습은 마치 프리츠 랑(Fritz Lang)의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1927)>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전시장의 1층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집단화된 인간의 통제된 신체와 인조인간의 자율성이 강한 대비를 이루며 ‘휴머니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짙은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 전시장 2층의 작품은 인간 소외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배경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미로와 같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계단, 온기 하나 없는 냉정한 공장의 철골 구조, 일거수일투족을 뒤쫓는 감시의 시스템 등 그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사회의 모습은 동시대적이면서도, 과거의 유물처럼 녹슬어 있고 또 미래의 풍경처럼 생경하고 삭막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나 담담하게 사회 전반의 구조를 꿰뚫어 보는 시선으로, 저마다 다른 장면을 포착한 작업은 기계적 시스템과 인간의 도구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향하여 균질한 톤으로 꿰어진다.
     
    3층 전시장은 오원배 작업의 기저를 살펴볼 수 있는 드로잉으로 채워져 있다. 1, 2층에서 보여준 ‘매크로(macro)’한 스케일의 페인팅과는 달리, 그의 드로잉에서는 도심 속 일상 생활 곳곳에서 포착해온 ‘마이크로(micro)’한 관찰력과 섬세한 감성이 돋보인다. 주변 인물과 소소한 사건을 속속들이 파헤치는데, 그 표현은 간결하고도 즉자적이다. 마주치는 모든 것을 화폭 속 이미지로 구상하는 작가의 오래된 습관으로 여기에는 어떠한 형식과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의 드로잉은 매 순간의 조우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대상과 함께 호흡했기에, 이들은 마치 꿈틀거리는 유기체처럼 리드미컬하게 시대의 흐름에 반응한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오원배의 기존 작업이 소외된 인간의 개별적인 실존 문제를 파고들어 왔다면, 이번 작품은 범(汎) 인간종(人間種)이 당면한 존재 양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반적으로 기능적 효율을 극대화하는 사회 구조가 어떻게 인간을 도구화하고 집단 명령의 체계를 형성해 가는지, 그리고 기계 문명의 발달이 어디로 치닫게 되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인간은 자신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각종 기계와 인공지능을 개발했지만 결국 그 기계들에 의하여 지배당하는, 인간과 기계 간의 전도된 관계를 그려내며 그는 ‘인간의 기계화’와 ‘기계의 인간화’라는 시대적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다. 하지만 기계 역시 인간의 기능과 사고를 물질화한 것일 뿐.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인간이 자신의 힘을 증가시키기 위해 치르는 대가는 힘이 행사되는 대상으로부터의 ‘소외’다. 계몽이 사물에 대해 취하는 행태는 독재자가 인간들에 대해 취하는 행태와 같다.”라고 하는데, 결국 인간 소외는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초래한 재귀적인 결과물이다. 이를 확인이라도 하듯 오원배의 작품 속에서 휴머니즘의 지배/피지배의 구조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인간/기계(인간의 산물)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빗겨나 있는 나비와 같은 작은 생명체이다. 몰개성한 모습으로 획일화된 인간의 머리 위로 유유자적 날아가거나, 견고한 건축 구조에도 위축되는 기색 없이 앉아있는 이 생명체야말로 자연만큼은 인간의 논리와 삶의 양식에 차폐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동시에 인간의 억압은 오로지 인간 행위의 결과일 뿐이라는, 그러하기에 회복의 여지가 있다는 한 가닥의 희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지금껏 오원배에게 ‘그리기’는 철학적 실천과도 같았다. 인간의 존재는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가, 억압적인 외부 환경에서 인간은 과연 주체성을 발현할 수 있는가, 기계 문명의 발달과 함께 허물어지는 휴머니티의 경계는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등 그가 그려온 회화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반성이자 휴머니즘의 회복을 향한 몸짓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 전시에서는 한결 과감해진 색상과 더욱 단순해진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품의 어조는 전에 없이 단호하다. 일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여럿일지라도 문제의 본질은 복잡한 것이 아니라는 통찰력과 원숙함이다. 사고가 깊어질수록 간결해지고 명료해진 그의 작업이 앞으로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지, 이번 전시가 그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하나의 궤적이 되기를 바란다.
     
    김소라 (OCI미술관 선임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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