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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Fragments of a Magic Garden : 마법 정원의 파편들
기간| 2018.01.22 - 2018.02.10
시간| 오전10시 ~ 오후 6시 30분
장소| 분도갤러리/대구
주소| 대구 중구 대봉동 40-62
휴관| 일요일,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53-426-5615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케어스틴 세츠,베티나 바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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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해외 작가의 전시가 벌어지는 장소에 준비된 평문, 혹은 소개 글을 보면 뭔가 어렵게 쓰인 것들이 많다. 어떤 건 언론을 대하는 보도자료처럼 꾸며진 것도 있고, 또 어떤 글은 진지한 평론도 있다. 내 안목과 지식이 고만고만하다는 사실을 전제하더라도, 그 글들이 내게 왜 쉽게 다가오지 않는지 생각해본다. 그 이유는 미술계에서 떠받들 듯 다루는 이론이나 사상가들이 실은 담론 생성의 본 고장에서는 수많은 논의 중에 하나일 뿐이고, 조금이라도 그 과잉된 인용으로부터 벗어난 이야기에 관해서는 비 서구 미술계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전시가 그런 요식적인 레퍼런스로부터 벗어나서 준비되길 원해왔다. 
    
    이 전시의 성격은 제목이 상당한 부분을 미리 드러내고 있다. 베를린에서 온 두 명의 작가가 자기 작업의 토양이 된 문화를 소개한다. 미리 넘겨짚어 보는데, 그들의 현재가 마법처럼 신비로운 건 아니다. 작가들이 바라보는 태도 혹은 원칙이 그런 이상향에 좌표를 설정한 것이 아닐까. 아무튼 신비로움을 상정한 그 이미지는 온전히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는 조각난 파편처럼 그 일부를 볼 뿐이다. 나는 그들의 파편(fragment)을 두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로 그것은 작품들을 스튜디오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리 공간에 다 옮겨 보여줄 수 없다는 한계를 뜻한다. 둘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 부분으로 제시된 그림들은 마치 깨진 거울처럼 그 하나하나가 전체를 품어 비추고 있다는 함의도 있다. 
    
    굉장히 사적이며 또한 엉뚱한 언급이기는 한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케어스틴 세츠(Kerstin Serz)와 베티나 바이스(Bettina Weiß), 두 명의 화가를 알게 된 약 5년 전부터 줄곧 이들의 작품 앞에서 마릴리온(Marillion)의 음악을 동시에 떠올려 왔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번에 유영동 선생이 제안한 전시의 표제 <마법 정원의 파편들>을 보면서 나의 치우친 공감각은 더욱 굳어지고 있다. 얼마 안 되는 팬들은 알겠지만, 영국의 옛 록밴드 마릴리온은 톨킨의 소설 <실마릴리온>에서 자기들 이름을 따온 곳이며, 처음부터 줄곧 마법사와 변신, 신비한 물건 같은 판타지를 음악 속에 다루고 있다. 물론 케어스틴 세츠의 초기 작품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참조한, 상당히 그리스 신화에 몰입된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이 예컨대 켈트족과 북유럽 신화를 밑에 깐 톨킨의 서사와 어느 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지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합리성이 우리 세계를 기술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세츠와 바이스의 회화가 보여주는 신화적 상상력 또한 이성의 틈새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음을 <마법 정원의 파편들>은 보여주고자 한다. 
    
    
    다시 확인하는 말이지만, 케어스틴 세츠의 그림은 화가 개인의 경험 위에 서구 신화로부터 뻗어 나온 감성과 지식을 상징적으로 재현한 노력이다. 모든 신화적 요소는 각각의 특 속에 박힌 전형적인 인물상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세츠는 그와 같은 인물과 피조물들을 화면의 중심에 둔 재현된 신화적 장면에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겹친다. 여기에 기름을 흠뻑 먹인 캔버스 위에 수채 물감을 칠하는 방식은 작품을 좀 더 신비롭고 중층적인 작품으로 완성시키고 있다. 상상을 실재로 표현하는 작업은 그 원천이 되는 판타지의 정제되지 않은 활력과 방종을 적어도 사각의 캔버스 안에 붙들어 고정하는 시도가 될 수 있다. 작가는 그 어떤 학식 깊은 신화학자가 아니고서는 곧장 배경을 알 수 없이 낯선 세계에서 출발하여,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의 구성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따라서 세츠의 그림은 부분적으로는 신화적 서술의 내러티브를 벗어난다. 못됐게 말하면, 그것은 작가에게 매우 쓸모 있는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을 완벽히 담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암시와 같은 형태는 관람객들이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여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는 애당초 자신이 가지고 있는 통합적인 관점, 그러니까 하나가 여러 가지를 설명하고, 또 전체가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관을 그림에 다 담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건 아닐까. 그 모습은 파편처럼 매 순간 우리 앞에 다가 올 뿐이다. 
    
    베티나 바이스의 회화는 다른 여러 추상 작업이 그렇듯이 어느 정도 확정된 기법을 중심에 두고 주제와 변주의 형식으로 모습을 조금씩 바꾸는 기획이다. 작가는 목판 위에 동그라미 원의 형상을 더해간다. 우리가 어릴 때 즐겨 봤던 만화경의 다채로운 프리즘이 우리에게 선사한 즐거움을 떠올려 보자. 그와 비슷한 시각적인 놀라움이 그녀의 그림에 확장되어 스며들어 있다. 주로 정사각형으로 된 나무판 위에 그려진 이미지는 그것들이 품은 색과 패턴이 나무에 정착되기까지 무수히 반복된 결과다. 그 넘실대는 도형은 작품마다 서로 다른 매혹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 작품은 상하좌우의 구분 없음, 색과 형상의 반전 속에서 마법의 정원을 헤매는 듯한 화가의 환상을 보여준다. 매 작품은 그것을 다른 작품과 구별하게끔 하는 일종의 운율을 가진다. 어떤 부분은 단순함을, 또 다른 부분은 복잡함을 염두에 두면서 그것들의 조화와 충돌과 반복과 중첩이 형태 없는 공간으로 뻗어가고 있다. 이 공간이 부여해놓은 진리가 작가 또한 오직 자신의 작품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환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윤규홍, Art Director/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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