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김도영 : 시적인 삶의 여정
기간| 2021.08.14 - 2021.10.03
시간| 10:00 - 18:00
장소| 드영미술관/광주
주소| 광주 동구 운림동 330
휴관| 월, 명절 당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62-223-6515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김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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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김도영은 우리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경북 영천의 50여 호가 사는 아름다운 산골마을 도동에서 태어났다. 인근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낯설고 물설은 광주에서 이방인으로서 치열한 삶의 현장에 자신을 던졌다. 당시에는 시골 여성으로서 대학에 진학하는 일은 쉽지 않은 시기였고 고소득의 전문직이 되는 길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런 처지에서 의상 관련 일을 하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었고 타고난 미적 감각과 성실함은 업계에서 신망을 얻을 수 있었고 성공과 안주의 길을 열 수 있었다.

 

그러나 소녀시절 꿈꿨던 문학가나 화가가 되는 일을 위해 생업을 포기하고 현장을 떠날 수도 없었고 한국사회의 역동적인 변화는 그녀를 마냥 한가롭게 놓아주지는 않았다. 의류업계는 맞춤복의 전성기가 이미 지나가고 있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도전하며 자신을 갱신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었다. 소규모의 어패럴 디자인 가게를 통해서 레디메이드 시장을 개척하며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려고 애를 썼었고 나름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고 드디어 사업가로서, 주부로서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그때는 동서의 길이 멀기도 하였지만 삶을 위한 일들에 매달리는 일은 고향을 더욱 더 멀리 있게 하였고 어떤 일이든 몰두하는 성품인 그녀에게 고향이나 찾는 안일함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틈틈이 그리움을 달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은 자연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본격적인 수업은 받지 않았으나, 그런 가운데 언젠가는 대학에 가서 어릴 적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중략)


그녀는 화가로서 삶을 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소일거리로 택한 여가선용의 수단으로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 한을 풀 마음으로 시작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폴 고갱이나 앙리 루소처럼 전업화가로서의 길에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혼신을 다하여 자신을 미술판(화단)에 던졌던 것이다. 이것은 미루었던 숙제를 완성하는 일이었고, 청춘의 시작을 영남에서 호남 땅 광주에 자신을 과감히 내던졌듯이 화가의 길에 투신하였던 것이다. 지켜보건대 그녀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듯이 이젤 앞에서 몸부림을 쳤다.


(중략)


그간 그녀는 화면 위에 수많은 붓자국을 중첩시키며 온갖 일상의 풍경들과 산, 꽃, 나무, 새들이 있는 들녘과 숲을 그리며 수많은 이야기들의 탑을 쌓아 올렸다. 끊임없이 수수되는 대상(소재)들과의 대화를 두터운 마티에르가 형성되도록 터치를 쌓아올리면서 화면을 채워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작품들은 버려지는 신문지들을 오려서 캔버스 위에 직조를 하듯이 붙여가면서 중성적 색채들을 조합하고 신문지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색채들을 통해서 자신이 즐겨 그리던 소재들이나 주제들을 그리고 있다. 사실은 그리기보다는 천을 짜듯이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씨실과 날실을 엮는 것은 아니나 직조와 같은 방식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그녀처럼 쉬지 않고 많은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는 흔치 않다.

시간과 정성이 요구되는 작품을 그렇게도 많이 생산하는 것을 수십 년 미술교육자 생활을 통해서도 별로 본 적이 없다. 이제 또 다른 변모가 계속 기대되는 것은 이런 그녀를 지켜보았기에 그러하다. 그녀 나름의 ‘오늘의 미술’(現代美術)을 펼쳐가는 그녀의 모습이 오늘따라 아름답다.

 

 

이정룡(前 호남대학교 예술대학장),「사랑과 자유, 아름답고 평화로움을 노래하는 세계」에서 발췌

 (출처=드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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