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XHIBITION
고스트 비키니 Ghost bikini
기간| 2020.01.09 - 2020.02.02
시간| 12:00 - 18:00
장소| 아웃사이트/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혜화동 71-17/1층
휴관| 월요일,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42-3512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김민희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하이? 빠이!
    2019 캔버스에 유채 162.2 x 130.3 cm

  • 개구리요정
    2019 캔버스에 유채 116.8 x 80.3 cm

  • 미도리
    2019 캔버스에 유채 27 x 40 cm
  • 			사연 없는 여귀들
    글_이현 («아트인컬처» 에디터)
    
    한 해를 넘긴 초입, 새빨간 비키니 차림의 귀신이 싱그러운 미소로 우리에게 “하이?” 인사를 건넨다. 김민희의 ⟨고스트 비키니⟩를 만나러 고개 넘고 땅굴 전시공간으로 들어온 당신을 향해, 안녕(安寧)하지 못한 존재인 귀신들이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멀어져간다. 해를 넘겨 왔다면 1월 1일 일출을 고대하며 ‘새해에는…’으로 운을 떼는 소원도 한 번쯤 빌어 봤다는 것. 해는 매일 떠오르지만, 1월 1일의 해는 어쩐지 2일이나 3일의 해보다 소원성취를 도와주는 용한 복신으로 느껴진다. 보름달에 소원을 비는 행위도 유사한 맥락이다. 지구와 382,500km 떨어진 우주에서 달은 늘 구형의 몸체를 유지하고 있지만, 지구를 공전하며 삭망월을 주기로 차고 기울어질 때마다 다른 위상과 이름을 갖고, 그중 만월은 만다라로서 신성한 종교적 제의적 상징을 부여받기도 한다. 해와 달이 자연에서 실재하는 상태보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이미지가 기원이라는 실제의 행동을 끌어낸다. 우리는 보이는 걸 믿는다.
    
    당신은 ⟨고스트 비키니⟩의 여성들이 귀신이라는 데에 조금은 아리송하다. 귀신을 표상하는 익숙한 장식이나 배경을 도무지 발견할 수도 없다. 월하의 공동묘지가 아니라 야자나무 늘어선 아열대 휴양지가, 지하까지 파고드는 음산한 우물이 아니라 평온한 바닷가가, 피 묻은 하얀 소복 대신 몸에 꼭 맞는 비키니를 입은 귀신의 출몰지다. ‘나랑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고 사라진 그 여자, 알고 보니 귀신이었대(꺅!)’ 정도의, 대중매체 단골 반전 효과를 기대한 것일까? 하지만 그림은 말이 없다. 반전이 작동하는 조건인 서사가 없으니, 우리 앞에 나타난 이 소녀들이 트로피컬 무드를 즐기는 관광객인지 슬픔과 한을 동반한 원혼인지 헷갈리기만 하다.
    
    귀신은 말 속에 산다. 문학이 되고 그림이 되고 영상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항간에 퍼진 야담과 유언비어의 모습으로 귀신은 우리를 만나러 온다. 동시에 귀신은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태어난다. 당대의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단정하려 할 때 타자들은 손쉽게 귀신이 되고, 퇴치해야 마땅한 대상으로서 지배 계층의 안녕을 위한 제물로 바쳐진다. 하지만 귀신들이 품은 원한의 종류와 크게 상관없이 대부분의 귀신 이미지는 고만고만한 특징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당장 ‘(한국)귀신’을 구글링해 보더라도 날씨와 계절에 따르지 않는 단벌 소복, 곧고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 종종 플러스알파로 피, 칼, 날카로운 손톱, 구미호 꼬리 등을 변칙 없이 장착하고 있다. 귀신 세계엔 유행도 없는지, 한결같은 귀신의 외형에서 주목해 봐야 할 사실은 이들 중 열에 아홉이 여성상이라는 것이다. 미디어는 그리고 우리는 여성의 (아직 못) 죽음을 어쩜 이토록 무수하게 뚝딱 상상할 수 있을까?
    
    오늘날 공포 장르의 관습으로 정착한 여귀의 재현 공식은 조선에 대중문화 산업이 본격적으로 자리한 일제강점기 식민지 체제에 만들어진 전통이다. 1920년대부터 일본에서 유행한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문화가 조선에 유입되면서 새로운 오락 상품으로 괴담(怪談) 소설이 탄생했고, 무서움과 전율이라는 자극적인 감각을 내세우면서 한여름 더위를 식혀 줄 납량물로 기획됐다. 텍스트와 함께 실린 삽화는 이전까지 추상적 개념이나 문학 차원에만 머무르던 귀신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했고, 일본 유령화가 여귀의 시각화에 영향을 미치면서 현재까지 일정한 양식으로 고착되어 왔다. 귀신의 존재를 부연하는 이미지가 등장하자 비슷한 표현 방식이 반복 재생산되고, 눈앞에 보이는 특정 부류의 이미지를 귀신으로 학습, 인식하는 믿음의 기제가 발동했다.
    
    김민희의 ⟨고스트 비키니⟩는 이 메커니즘에 균열을 내며 시작한다. 귀신같지 않다는 낯선 인상은 오히려 귀신같은 것의 의미를, 귀신 이미지의 클리셰를 다시 고민하게 한다. 여귀를 규정하는 재현 범위는 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정하며, 무엇이 한국사회에서 여귀를 자꾸만 소환하는지 재고한다. 김민희는 귀신을 구축해 온 진부한 장치들을 의도적으로 선택 변형 해체하거나 이질적인 상황에 재배치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유년 시절 성장하며 접한 대중문화의 요소를 자연스럽게 결합하면서 하나의 정형으로 온전히 짜 맞추어지지 않는 잘못된 퍼즐처럼 귀신의 정의를 어지럽히고 재해석한다. 다만 물가에 몸을 살짝 걸치면서 발생하는 발목의 부재가 귀신 특유의 불완전한 신체를 암시할 뿐이다. 우거진 녹음이 흥취를 돋우는 바캉스 지대가 귀신의 고향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알록달록 수영복을 입고 말간 표정으로 당신과 눈 맞추는 여성이 귀신으로 보이는가?
    
    ⟨고스트 비키니⟩가 열린 전시공간 아웃사이트의 근방에는 일제강점기 한국인 공동묘지가 조성되었던 미아리고개가 있다. 언덕을 넘어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히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 고개에는 죽은 자들을 둘러싼 애도와 공포, 설움과 호기심이 온갖 이야기로 구전되어 떠돌았을 것이다. 귀신은 사연이 필수적이고―또는 사연이 귀신 그 자체고―, 가부장 사회에서는 여귀의 억울함을 해소한 다음 저승으로 떠나보내는 남성의 용기와 능력이 서사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김민희는 사연 없이도 사는 귀신을, 그리하여 우리와 함께 이승에 사는 여성을 떠올리며 전형을 탈피하고 구조를 전복한다. 원한으로 애달파하던 귀신들은 이제 태어난 김에 살 듯 원하는 옷을 입고, 명상과 등산 활동을 취미로 삼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해수욕하고, 기쁘고 행복하고 놀라고 무덤한 감정의 다양성을 표출하며 지금의 분위기를 만끽한다. 더 이상 남성에게 의지해 떠남 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빠이!”를 외치며 주체적으로 나아간다. 삶을 욕망하는 귀신에겐 붉은 피 대신 비키니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미래의 배우자를 찾아 자정에 칼을 물고 거울 보는 괴담까지 즐기는 씩씩한 여귀들. 김민희의 판타지 세계에서는 귀신도 순정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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