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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김석화 개인전 : Moon - Life
기간| 2021.04.13 - 2021.04.18
시간| 10:00-13:00,14:00-17:00 * 4/13(화) 14:00-17:00 (13:00-14:00 방역, 홈페이지 사전예약 후 입장)
장소| 봉산문화회관/대구
주소| 대구 중구 봉산동 125
휴관| 월요일, 설, 추석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53-661-350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김석화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먼곳에 비친 달
    2020 한지, 아크릴 162.2x130.3cm

  • MOON-composition
    2021 나무판, 아크릴, 거울지, 우레탄 194x139cm

  • romance
    2021 한지, 아크릴 60.6x60.6cm

  • MOON
    2020 한지, 아크릴 34x24cm
  • 			전시소개
    
    
    작가는 코로나19 아래에서 여느 사람들처럼 '코로나블루'라는 우울증을 겪고 있다. 본 전시는 그 가운데서 예술가적 자아를 찾으려는 여정으로 달의 형상을 부서지고 갈라진 형태로 성찰을 거듭하는 유미주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작가에게 달은 인간과 자연을 중재하는 감정의 매체로써 친숙한 존재이며 또한 자신을 투영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 전시는 작가가 지속해 온 달 그림을 일련의 추상적 조형작업을 통하여 완성한 다양하고 낯선 이미지를 10여점의 회화작품으로 선보이는 기회이다.
    
    
    
    작가노트
    
    얼마전 한국의 가난한 이들과 평생을 살다 가신 고 정일우 신부의 다큐 <내 친구 정일우>를 보았다. 신부는 “저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진정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는 외침에 문득 눈물이 쏟아졌다. 나름대로 완벽하게 살아내려는 내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우리 모두는 깨진 꽃병이다. 너도나도 깨어진 꽃병으로 삐죽히 드러난 상처를 안고 산다.” 그 상처가 자신과 타인을 향해 갈수도 있지만 신부는 그 본분인 꽃병의 자리를 지키고 싶어했다.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의 시에서도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주인공의 안쓰러운 모습에  부처님은 그를 쓰다듬으며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고 또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마주한 코로나블루의 상황으로 치열한 살아내기를 통해 내면을 더욱 튼튼히 해야만 했다. 그리고 여전히 달을 소재로 그리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 전시작들은 자신의 상처, 고통을 자각하고 들여다보는 작업이며, 깨져버린 꽃병처럼 조각을 조심스레 끼워 맞추며 위로하고 있다.  2021. 3
    
    
    
    전시 서문
    
    
    달에서 꿈을 찾을 수 있다면
    
     화가 김석화가 그린 달은 아름답지만, 그것이 품은 미는 우울과 고통, 그리고 슬픔을 담고 있다. 그의 회화는 표면적으로 경쾌한 색조나 배열을 두면서 아름다움의 형식에 매달린다. 하지만 관객이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 한다면 그 태도는 순진하다. 캔버스 화폭에 줄 지워 무수히 들어선 달 형상을 보며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삶을 둘러싼 불안을 젖혀두고 어떻게 그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까. 미리 고백하자면, 그의 작품을 매개 삼아서 전적으로 행복한 순간을 붙잡아두려고 했던 순진한 사람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였다. 2019년과 2020년에 잇따라 공개된 개인전을 보고, 나는 가벼운 감상기를 통해 작가의 그림을 알록달록한 m&m 초콜릿에 비유했다. 나는 또 동요 <달달 무슨 달>의 노랫말에 빗대어 즐거운 심상을 이야기한 바가 있다.
    
     하지만 작가 김석화가 그리는 달은 “쟁반같이 둥근 달”이 아니라 반달이었으며, 겉으로 아기자기하게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층위 밑에는 깊은 멜랑콜리가 깔려있었다. 이 사실을 처음에 무심히 지나쳤다가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건 내 식견이 부족함 때문이다. 변명을 풀어놓자면, 두 개의 반달 형상이 붙어서 온전한 동그라미로 보였으니까 보름달이냐 반달이냐를 따지는 언쟁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의 생애 어느 순간에 포착된 달의 형태가 도상으로 들어왔을 터인데, 그 계기에 관한 당사자의 구술이 공개되지 않는 한 “왜 반달?”이라는 주제 탐구에 감상자들이 얽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 관객에게는 이미지의 탐닉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작가의 그림을 보고 행복을 느낄 건가, 우울함에 파묻힐 건가, 아니면 이 두 가지 감정을 한꺼번에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느 쪽도 상관없지 않나? 내 생각에 이것은 지식의 축적도, 윤리의 당위성도, 혹은 취향의 선택과도 별개의 문제다. 그저 몇 해 전의 나는 그림에서 밝은 면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보고자 했던 것이고, 우울증을 떨친 지금의 나는 타인의 어두운 면모를 살필 여유가 생긴 것이다. 다만, 수용자의 이와 같은 태도 가운데 세 번째-행복과 우울한 감정을 동시에 느낄 여지에 관하여-유형은 이번 전시 <Moon-Life>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구하는데 가장 적합하다. 지난 개인전 이후 약 일 년에 걸친 작가의 삶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코로나 블루”다. 역병의 창궐에 우울함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덧댄 이 신조어는 그의 최근 작업 성격을 잘 나타낸다.
    
     마냥 행복하진 않지만 매혹적인 삶은 존재한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최근의 환경임에도, 나는 김석화라는 한 명의 화가를 찬찬히 살필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이전엔 잘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는데, 작가는 창작과 전시를 거듭하면서, 작업과 일상의 비율을 균형 잡는 일에 애써왔다. 그는 독서와 산책을 중시하고, 문화시설에 자신의 재능과 경력을 나누는 동시에, 예술인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그림 그리기를 중심에 두고 책 읽기와 걷기를 그 앞뒤에 배치하며 작업의 강약을 조절해 왔다. 작품 구상과 실행은 그 준거의 언저리에 놓인 비예술적 활동이 있어야 한다. 예술을 노동으로 환원한다면 산출과 기대효과가 막연할 수밖에 없는 일련의 작업은 작가가 자신을 소외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끔씩 작가는 정호승의 시 <산산조각>에서 깨진 꽃병처럼 무기능의 존재로 자기인식한다. 그런데도 작가는 일관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달이라는 소재는 작가의 삶 속에서 찬란한 콘텐츠를 꽃 피우는 여지가 됐다. 달은 비슷한 시간과 궤적에 걸쳐서 밤하늘에 늘 있고, 여기 작가의 삶도 그처럼 반복된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달은 오랜 세월에 걸쳐 예술의 동기가 되어왔다. 예술가들은 각자 방식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달을 표현해 왔다. 여러 수단으로 관찰하고 묘사해온 그 아름다움은 현대의 광학 기술 발전에 맞춰 새로운 스펙터클을 제공한다. 그래서 예술이 아닌 무엇이 예술만큼의 경탄을 끌어내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 이탈리아에서 한 천체사진가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찍은 달 사진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 화면에 담은 각각의 달은 갖가지 색깔을 품고 있다. 그 이미지를 본다면 김석화 작가의 그림 속 달과 비슷해 보이는 면모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달 지표면의 크레이터들은 그림 속 붓질의 흔적과 굉장히 닮은 점도 그중 하나다. 우리가 달을 떠올릴 때 노랑 또는 하양에 가깝게 인식하는 색의 범주가 관측 사진 속에서는 훨씬 다양하게 포착된다. 그것은 지역마다 다른 공기 질에 따라 산란의 정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망원경으로 관측하거나 탐사선이 현지에서 보내온 사진을 보면 달 표면은 무채색의 지대다. 대상은 고정되어 있는데 그것을 비추는 조건에 따라 색은 달라진다. 지구 그림자가 만들어낸 달의 차고 이지러짐 역시 당연한 이치 아닌가. 
    
     캔버스 화면을 덮은 물감의 입자 또한 다를 바 없다. 예컨대 단순히 생각하면 파란색 물감의 분자 알갱이는 파란색을 띨 것 같다. 그러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그 분자들의 색은 회색에 가깝다. 우리가 눈으로 관찰하는 대상은 그 색의 속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 그리고 대뇌에 서로 다른 색으로 보이게끔 배열의 차이만을 가질 뿐이다. 생물학으로부터 사회학에 걸쳐 급진적 구성주의(radical constructivism) 패러다임이 밝힌 과학적 원리에 따르면, 객체와 주체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현재 내가 처한 조건에 따라 세계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따름이다. 내가 웃으면 나를 둘러싼 세상이 웃고, 내가 근심에 쌓이면 이 세계도 흐린 법이다. 하늘에 있는 달이나 김석화 작가가 그린 달이나 모두 빛의 반사체다. 이번 전시에서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온 거울지 작업만 봐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시도라고 할 수 있는 은박 재료를 작업에 끌어들인 이유도 알 법하다. 그는 본인의 심정을 반영하는 달을 좀 더 분명하게 실체로 남기고 싶어 한다. 거기에 비쳐 반짝이듯 맺힌 상은 다름 아닌 그림을 보는 가장 첫 번째 관찰자인 작가 본인이다. 화폭에 담은 각양각색의 달은 매 순간 바뀌는 작가의 희로애락과 인간관계, 그리고 예술 의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달에 얽힌 예술적 알레고리는 직유도 은유도 아닌 반영 그 자체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작가가 선택한 예술의 시공간 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달이라는 소재가 아니라, 또 어쩌면 그림조차 아닐 수 있으며, 그 작품들과는 관계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시야와 인식이 뻗어간 곳과는 다른 알 수 없는 경지, 굳이 말하자면 기본적인 조형의 색면과 공간 배치를 통한 환희에 의미를 둔다. 이것이야말로 작가를 추상화가라고 정의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 환희를 실현하려는 일체의 활동과 관념은 아마도 그에게 두 가지의 다른 양상으로 드러날 것 같다. 하나는 삶의 활기이고 다른 하나는 강박과 불안과 자책 그리고 의무감 따위가 엮인 우울이다. 달은 그러한 작가의 양면적 속성을 비춘다. 그는 달을 일종의 핑계 삼아 자신의 미적 세계에 길을 터놓았다. 설령 그가 달이 아닌 다른 무엇을 화폭에 담더라도 그것이 가져올 유미적 경관을 우리가 무시할 수 있을까? 작가는 자신의 예술을 포장하는 대신 겸손하게 비추는 거울이 필요했고, 달을 통해 자신과 주변의 것을 적당히 드러내고 또 숨기고 있다. 드러냄과 숨김의 균형에서 예술은 빛을 발한다.
    (윤규홍, 아트맵 디렉터/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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