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024.01.25 - 2024.0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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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 10:00 - 18:00 |
장소| | 페로탕 도산파크/서울 |
주소| |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10 |
휴관| | 일, 월 |
관람료| | 무료 |
전화번호| | 02-545-7978 |
사이트| | 홈페이지 바로가기 |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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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페로탕 서울은 2024년 첫 전시로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 이상남의 개인전 《Forme d’esprit(마음의 형태)》을 개최한다. 1990 년대부터 2023년까지, 이상남의 회화 세계를 아우르는 작품 13점을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40년의 예술적 커리어 속에서 축적된 작가만의 독창적인 기하학적 추상 언어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합리와 비합리, 아날로그와 디지털, 회화와 건축, 미술과 디자인 사이의 샛길을 건든다. 그 사이에서 산다. 회화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 - 이상남 이상남은 1981년 뉴욕으로 건너가기 전 실험미술 전시회에 다수 참여하였다. 1972년과 1974년 앙데팡당 전시에 참여하면서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사진 매체를 활용해 <창문> 시리즈를 보여주었다. 1970년대 중반 대구를 기반으로 일어난 실험미술 운동인 대구현대미술제를 비롯해 1977년 일본 센트럴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1979년에는 제15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하면서 국제적 행보를 넓혀나갔다. 1981년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린 《Korean Drawings Now》라는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그는 뉴욕으로 가게 된다. 이상남이 뉴욕으로 떠난 이후 얼마 안 되어 박이소(박모)도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20대였던 이상남에게 1970년대는 회화에 대한 실험과 이론적 질문을 끝없이 제기하고 자신의 미학관을 찾아 나갔던 시기였으며, 앙데팡당전 등을 통해 박서보와 이우환의 반전통적인 예술의 방식과 매체를 고민하던 때였다. 이상남이 1981년 뉴욕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가 한국에서 맞닥뜨렸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은 뉴욕에서 인기가 별로 없었던 때였다. 독일표현주의, 신표현주의, 에릭 피슬이나 데이비드 살레 등이 제작한 회화가 인기를누리고있었던때였고그는다양한개념과미술가,미술기관등이 범람하는 뉴욕의 미술계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까지 자신의 미술 언어의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상남이 귀국 작가로서 1997년 현대화랑에서 전시를 시작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초기 뉴욕시기는 그의 작업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뉴욕에서는 대안공간이 융성하기 시작하고 페미니즘 미술, 제3세계 미술, 식민주의, 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평 이론이 미술계를 뒤덮기 시작한 시기였다. 박이소가 1985년 브루클린에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를 설립하며 적극적으로 주변부에 있던 제3세계 출신 작가들의 전시를 개최하며, 정체성의 정치학으로 선회할 때 이상남은 기하 추상 회화를 통해서 서울에서 찾지 못한 답을 찾았다. 그가 뉴욕 초기에 그렸던 이미지의 형태는 회화의 재현성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낯설고 이질적인 기호를 각인시킨다. 이는 이미지이자 형상이며, 형태이자 기호로 보인다. 점, 선, 면의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되어 있지만 정확한 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뉴욕 시절 이상남은 박이소가 운영한 마이너 인저리에서 열린 《사적 역사/공적 발언(Personal History/Public Address)》 전시에 참여하고 박경(Kyong Park)이 디렉터로서 창립했던 스토어프런트 갤러리(Storefront Gallery for Art and Architecture)에서 기획한 《Homeless at Home》전에 참여한다. 이러한 전시를 통해서 그의 작품은 회화의 세계와 프레임 밖의 세계를 분리했던 모더니즘 시각에서 탈피했다. 그에게 회화는 우리의 삶의 공간과 건축 공간, 사회적 이슈가 서로 교차하고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얽힌 세계관을 구축한다. 특히 이 시기에 이상남은 회화가 건축적 공간 안에서 현상학적으로 새롭게 자리잡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 특유의 ‘설치적 회화(installation painting in situ)’를 정립해 나갔다. 그가 질 들뢰즈를 연상하며 말하는 “어긋나게 하기, 비틀기, 겹치기”와 같은 묘사는 회화를 건축과 디자인, 주변 공간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의 회화에 축적된 숫자나 부호, 문자나 암호 등과 같은 기호들이 존재하는 방식과도 연관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과 얽힘, 존재 자체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도 이어진다. 이상남의 작품은 형식적으로 보면 기하학적 추상 작업이지만 그의 작업에서는 이미지의 형태도 내용도 서로 고정된 관계를 끊임없이 부정하면서 생기는 의미의 균열과 파열이 생겨난다. 이 균열은 때로는 긴장과 위트를 유발하는데, 그의 그림이 뚜렷한 형태들을 재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있다.물론이미지사이사이로보이는형상은어느한순간기계 문명의 총체적인 도시로 보이기도 하고, 일상적 사물이 층층이 쌓여서 축적된 사물의 파노라마로 보이는가 하면, 기하학적 형태로 만들어지는 음표들의 대행진, 색채와 형태로 에너지의 흐름을 드러내는 주제들을 보여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색채는 재현의 문법에서 이탈했다. 이상남의 기호는 누군가의 시그널처럼 어떤 경우는 비의적이고 신비적인 분위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는 왜 의도적으로 이미지를 화면에 고정하지 않는 것일까. 왜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형태를 미끄러지게 작동시키는 것일까. 이상남이 선택한 형태들은 기호가 되어 여기와 저기를 끊임없이 부유하며 자리 잡기를 거부하는 ‘유목민적 존재들’이다. 그의 작품 속 이미지들을 기호라고 여긴다면 그 기호들은 한 곳에서 자리 잡고 이야기를 만들며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정착하지 못하는 노마드적인 존재로서 여기와 저기를 연결하고 얽히게 만들어 나간다. 이상남의 기호는 작가 개인의 인생과 그가 살아온 다양한 도시의 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는 자신 스스로를 이동하며 존재하는, 일종의 표류적 존재로 만들어 왔다. 그의 회화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얽힘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의 작품이 인공지능이나 자기 생성 이미지와 연결해도 뭔가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는 것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극단적인 경향을 포용하고 통합하는 것도 그의 회화가 가진 표류하는 이미지의 힘 때문이다. 수십년동안그가그린드로잉다이어리는이러한부유하는기호로가득한 기록물이다. 그는 형태가 고정되며 이미지가 가독성 있게 만들어질 때는 다시 이미지를 부정하는 회화적 단계를 거쳐나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에 의미의 이름표가 생길 것 같으면 작가는 다시 이미지/기호를 미끄러지게 작동시킨다. 이미지의 고정된 의미는 하나의 상징으로 우리가 사회에서 통용하는 것이지만, 이상남이 만드는 것은 포스터모던 미술가들이나 이론가들이 시도했던 ‘알레고리적 충동(allegorical impulse)’이나 독일 철학자 벤야민의 알레고리, 혹은 롤랑 바르트의 무딘 의미(obtuse meaning)와 서로 통한다. 이상남은 한 문화 속에서 배태된 상징적 의미를 거부함으로써 그 문화 속에서 소통되던 일차적 의미나 고정관념, 전통을 부정하는 사유의 방식을 선택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의미는 풍부해지고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서로 포용되고 수용되면서 배타적인 방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다양한 인종만큼이나 많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의 속성을 이상남은 신추상의 방식으로 기하학적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기호는 그가 40년 이상 축적한 이미지이다. 그것은 단순한 형태에그치지않고작가가그린도시와장소의풍경,살아온삶의궤적과 여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압축된 마음의 풍경화(compressed landscape)이다. 이상남의 작업에서 기호의 형태에 이르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제작 과정 그 자체도 특이하다. 초기에는 모든 것을 손에 기대어 프로토타입의 형태를 만들고 이를 평면 안으로 옮겨왔지만, 점차 컴퓨터를 이용해 프로토타입을 만듦으로써 더 많은 이미지를 추출하는 일종의 ‘알고리즘’ 과정을 거친다. 작가가 상감세공의 과정으로 설명하는 제작 방식은 바탕에 아크릴 물감을 칠하고 옻을 입히고 또 사포로 문지르고 색을 입히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작가가 손작업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인공적인 매끈한 물질을 만들기 위한 노동”에 속한다. 네 번 접은 풍경화인 <4-fold landscape>(2016)에서 이미지들은 중첩되고 접힌 상태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그가 이번 전시의 제목을 ‘마음의 형태(forme d’esprit)’라고 붙인 이유도 이미지의 형태와 기호들이 마음의 여정과 궤적,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가가 다양한 아이콘들을 중첩 혹은 충돌시키는 ‘감각’의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은 그가 뉴욕의 저드슨 댄스 씨어터(Judson Dance Theater: 댄스, 퍼포먼스 등을 보여주는 뉴욕의 실험미술, 아방가르드 콜렉티브)에서 체화한 몸의 움직임과도 연관되어 있다. 관람자들은 자기 몸을 직접 움직여 그림 속의 아이콘과 우연히 만나며 자신이 알고 있던 형상 기억을 깨고 새로운 이미지(기호)의 탄생을 경험한다. 물질 그 자체와 내가 하나가 되어 수많은 시간성과 노동력을 가해야만 마무리가 되는 이상남의 작업은 흔히 단색화 작가들이 천착했던 표면 그 자체의 물성과는 완전히 반대의 해답에 다다른 것이다. 그는 뉴욕과 같은 오늘날의 대도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던 다양한 컬러를 억제하지 않으며, 미니멀하고 기계적인 표면의 매끈함을 거절하지 않았다. 뉴욕을 경유해 이상남은 여기와 저기(여기와 저기는 사실 어떤 특정 장소가 정해있지 않은 곳이지 않은가?) 사이를 이동하고 표류하는 동시대인들의 삶을 반영하며 기하학적이고 엔트로피 하며, 그래서 리좀적으로 얽혀있는 동시대의 관계적 풍경화를 제작했다. 이상남의 작품에서 전경과 후경의 거리감이 압축되어 사라지듯이 그 공간에는 수평적인 시간성이 중요하게 자리 잡기 때문에 여기와 저기는 쉽게 저기와 여기로 전치될 수 있으며, 중심과 주변부라는 힘의 역학으로 존재하는 것을 거부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샛길,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샛길에 존재하는 이상남의 회화는 다양한 공간과 장소, 시간성을 매개하는 얽힘 그 자체의 풍경화를 만든다. 정연심 (홍익대학교 교수) (출처 = 페로탕 서울)